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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한국은 지금] 도로를 걷는 사람들 "무단횡단하면 안 되나요?"

입력 : 2017-05-27 13:00:00 수정 : 2017-05-27 15: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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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 근절을 위한 저승사자 퍼포먼스. 할머니 분장을 한 여배우가 땅에 쓰러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얼마 전 운전면허를 딴 L씨는 출근길 집 앞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자신을 향해 손수레를 끌며 다가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진땀을 흘렸다. 중앙선을 넘거나 하늘로 날지 않는 이상 피해 지나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몰랐는지 경적을 울려댔고, 급기야 창 너머로 고성이 들려 왔다.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L씨는 과감히 속도를 높이며 중앙선을 넘었다. 

그리고는 멀지 않은 곳에 횡단보도가 있음에도 도로를 가로지르는 행인이 바로 코앞에 나타나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반쯤 넋이 나간 L씨에게 행인은 되레 “조심하라”고 충고하며 길을 건넜다.

■ 무단횡단 현황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OECD 평균인 1.4명보다 약 3배 더 높은 4.1명으로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보행자의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가 전체사고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43%에 이른다.

캠페인, 안전교육 등을 통해 근절을 호소하고 있지만 무단횡단이 줄지 않는 지금. 법원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과거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던 것과는 달리 운전자가 교통질서를 잘 지킨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는 보행자 과실을 더 크게 보는 판결을 잇따라 내고 있다.

■ 무단횡단의 위험성
교통안전공단이 최근 3년간 무단횡단 교통사고 통계를 낸 결과 15만 2000건으로 나타났다. 그중 6200여 명이 사망하고 15만 3000여 명이 상해를 당했다.
특히 무단횡단 사고 치사율은 8.2%로 정상적인 횡단사고(4.2%) 보다 두 배나 높다.

무단횡단을 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다. 또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일부는 무단횡단을 한다.

왜 그럴까.
무질서한 도로. 할머니와 차량이 도로를 동시에 가로지르고 있다.
■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
서울 시내 중에서도 무단횡단을 쉽게 할 수 있는 편도 2차선 도로 서너 곳에서 일주일간 관찰하며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무단횡단을 한 시민 일부는 불쾌한 듯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일부는 “신호를 기다리기 귀찮다”는 답변과 “빨리 길을 건너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일주일 사이 낮 기온이 한여름 더위를 보이자 뙤약볕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중년 남성은 “차도 없는데 좀 건너면 안 되는 거냐”고 되물으며 “무단횡단 안 해본 사람 있으면 찾아서 데려와 보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또 멀쩡한 보행로를 놔두고 도로 위를 걷는 시민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남들도 다 한다”며 “차도 오지 않는데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일부는 보행로를 점령한 불법주차 차량과 인근 상점에서 내놓은 물건을 피해 도로 위를 어쩔 수 없이 걷고 있었다. 상점 주인에게 물건 때문에 시민들이 도로로 걷게 된다고 하자 “금방 치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전 10시에 봤던 물건은 오후 5시쯤 되어서도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 2차선에서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사람을 피해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으로 다니는 건 힘들다"며 "도로는 차들이 알아서 피해간다"고 말했다. 실제 신호가 바뀌어 몰려든 차들은 할아버지를 피해 1차선으로 옮겨 안 그래도 복잡한 아침 출근길이 더 복잡해졌다.
보행로를 놔두고 도로를 걷는 사람들. 도로를 걷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남들도 그러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이다.
■ 최근에는 박스를 줍는 노인들도 가세해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박스나 폐지를 줍는 노인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후 지금은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노인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택가를 돌며 박스를 줍곤 하는데 대부분 차가 다니는 길을 이용한다. 노인들은 지나는 사람 때문에 손수레를 끌기 어렵고, 행여 상점의 물건을 건들여 혼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로로 다니는 노인들도 답답하겠지만 운전자들도 답답하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무질서한 도로. 수레 끄는 할머니부터 도로를 가로지르는 행인, 차도로 걷는 사람 그리고 자동차까지 한데 얽혀 있다.
무단횡단사고는 운전자, 보행자 모두가 조금만 신경 쓰면 줄일 수 있다.
횡단보도는 보행자들을 보호하며 사고 예방을 위해 존재한다. 다소 귀찮더라도 자신을 위해 횡단보도를 이용하면 어떨까 한다.

사진·글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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