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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객석 벽 허물고 소통… 관객, 배우와 함께 연극이 되다

입력 : 2017-08-27 20:46:42 수정 : 2017-08-27 20: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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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다. 관객은 나 하나다. 조명이 꺼지면 배우 한 명이 보인다. 그가 손전등을 비추는 대로 어둠 속을 따라간다. 일순 사방이 하얗게 밝아진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29일부터 선보이는 공연 ‘천사-유보된 제목’의 시작 부분이다. 이 작품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무대는 극장 전체다. 단 한 명의 관객이 60분 동안 극장을 여행한다. 누가 배우이고 관객인지, 어디가 객석이고 무대인지 칼로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이처럼 기존 경계를 허무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re)이 줄줄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무대와 객석, 관객과 배우가 나뉘지 않고 관객이 공연에 적극 참여하는 이머시브 공연이 올해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해 공연한 ‘로드씨어터 대학로’.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제공
◆일방통행은 그만… 관객 참여로 공연 완성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이 수동적으로 무대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참여하고 만지는 등 오감으로 체험하는 형식이다. 정해진 틀이 없기에 온갖 실험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이머시브 공연을 본격 선보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자은 과장은 “물 속에 몸을 담그듯 온몸을 통해 전달되는 공연”이라며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든 예술가들이 극장 바깥에서 관객과 1대 1로 소통할 방법을 찾다가 이런 방식이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에서도 비슷한 시기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가 주목받았다.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 작품은 뉴욕의 버려진 호텔을 통째로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무대로 바꿨다. 관객은 가면을 쓰고 각 방을 돌아다니며 극에 참여한다.

다음달 3일까지 공연하는 ‘천사-유보된 제목’에서는 관객이 평소 접근금지된 남산예술센터 무대 뒤편까지 따라들어가며 폐허 더미, 폭풍을 지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서현석 작가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거칠고 고독하면서 몽환적인 연극적 상황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달 21∼30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서울예술단의 ‘꾿빠이, 이상’도 새롭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바닥이든, 무대 세트든 원하는 곳에 앉거나 서면 된다. 원작은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천재 시인 이상의 유품인 ‘데드마스크’를 중심으로 시인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오세혁이 각색과 작사, 김성수 음악감독이 작곡·편곡, 오루피나가 연출을 맡았다.

문화예술위는 10월 20∼29일 대학로 일대에서 ‘로드씨어터 대학로’를 공연한다. 지난해 10월 초연한 이 작품에서 관객은 극장 연습실, 자취방, 술집 등 대학로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상황극에 참여했다. 올해는 관객이 대학로의 숨은 매력과 일상을 느낄 수 있도록 투어 형식을 강화했다.

문화예술위는 또 지난 6월 관객이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 공연에 참여하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를 재연했다. 초연은 2013년이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안무를 배우고 퀴즈를 풀고, 부수고 싶은 일상의 벽을 종이에 적은 뒤 마지막에는 삶의 족쇄를 풀 듯 축제를 벌였다.

김아형 서울예술단 홍보팀장은 “이머시브 공연에서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돼 단 한 번뿐인 경험을 하게 된다”며 “돌발 상황이 많아 연습 단계부터 배우들이 유연성과 대처 능력을 훈련한다”고 전했다. 올해 ‘내일 공연인데…’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을 만든 김태형 연출가는 “새로운 형식을 해보고, 공연을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영상 매체에서 훨씬 풍성한 서사를 선보이고 있기에, 공연을 통해 직접 체험하고 몸에 각인될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공연한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관객 “신난다·즐겁다”… 수익성은 풀어야 할 과제


관객 호응은 뜨겁다. 문예위 김 과장은 “‘내일 공연인데…’ 서울·수원 공연 모두 매번 좌석이 동났다”며 “배우와 1대 1로 만나고, 무대와 객석이란 벽 없이 바로 서로의 반응을 체감할 수 있어 강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 연출 역시 “즐겁고 신나고 새롭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반면 드라마가 별로 강하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며 “이머시브 공연은 주제가 잘 전달되면 오히려 일반 공연보다 더 강렬하게, 온몸으로 이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익성의 한계는 풀어야 할 과제다. 한정된 관객만 참여할 수 있다 보니 수익을 내기가 힘들다. ‘천사-유보된 제목’의 경우 하루 단 40명만 공연을 본다. ‘내일 공연인데…’ 역시 회당 120명이 조연출과 짝을 이뤄 극장 곳곳을 누빈다. 이 때문에 이머시브 공연의 대부분이 공공극장 주도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이 참여하기 힘든 형식이 많은 것도 약점이다.

그럼에도 이머시브 공연은 앞으로 계속 시도될 전망이다. 김 연출가는 “디지털 복제로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라 거꾸로 자기만의 것을 더 원하고 아날로그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이머시브 공연이 남과 다른 걸 경험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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