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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페스티벌] 구름인 듯… 눈밭인 듯… 한여름 온통 하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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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5 08:00:00 수정 : 2017-10-1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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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엥겔베르크의 티틀리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8번 교향곡이 스위스 루체른의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다. 소프라노를 비롯해 수많은 독창과 합창,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지면서 천상에 대한 찬미와 인간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가슴을 울린다. 1910년 초연 당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원되면서 ‘천인(千人) 교향곡’이라고 불리게 된 이 곡은 현대에 와서도 웅장한 스케일과 다양한 연주기법 등으로 어려운 공연으로 유명하다.

루체른 페스티벌을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만들었던 아바도가 2014년 타계하고 2016년 그의 수제자라는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봉을 잡았다. 스승의 명성을 잇기 위해 그가 선택한 곡은 말러의 8번 교향곡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클래식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말러가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 써내려갔다는 교향곡은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봉을 타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내려앉은 루체른 시내를 걸어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천상의 음악 같았던 공연의 감동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침대에 누워서도 꿈인 듯 아닌 듯 교향곡의 선율이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천사의 마을’이라는 뜻의 ‘엥겔베르크’ 티틀리스산은 스위스 중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3020m로 알프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해가 떠오르고 어둠이 걷히면서 어제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졌지만 공연의 감동은 아직도 주위에 맴도는 듯하다. 오늘은 또다시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든든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았다. 공용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천사의 마을’이라는 뜻의 ‘엥겔베르크(Engelberg)’로 갈 예정이다. 루체른에서는 차로 50분 정도 걸린다. 스위스 중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3020m에 멋진 스키 리조트가 있는 곳이다. ‘천사의 마을’은 알프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티틀리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곤돌라인 티틀리스 익스프레스로 중간역까지 오른다. 그곳에서 세계 최초의 회전 공중 케이블카인 ‘티틀리스 로테어’로 갈아탄 후 정상까지 가면 된다. 곤돌라가 360도로 천천히 회전하면서 알프스의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곤돌라 승강장에는 여름의 만년설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곤돌라 승강장에서 내려다본 엥겔베르크는 정말 천사들이 살 것 같은 초록이 짙은 평안한 마을이다.
티틀리스산을 가려면 곤돌라 ‘티틀리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중간역까지 오른 후 세계 최초의 회전 공중 케이블카인 티틀리스 로테어로 갈아타야 한다.
360도로 천천히 회전하면서 알프스의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티틀리스 로테어.

엥겔베르크를 뒤로하고 관광객을 가득 실은 곤돌라가 움직인다. 곤돌라가 지상에서 점점 멀어지니 파란 하늘과 하얀 만년설로 덮인 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크고 넓은 곤돌라는 3000m 높이의 산 정상으로 안내하며 환상적인 경관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지상에서 멀어진 지 30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눈앞에 다가선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계절을 바꿔 놓은 듯하다. 태양과 조금 더 가까워서인지, 산 위에 쌓인 만년설 때문인지 햇살이 눈부셔 눈을 뜰 수가 없다.
곤돌라에서 내리자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곤돌라에서 내리는 관광객에 떠밀려 정상에 내려섰다. 구름 속인지 눈밭인지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먼저 ‘빙하 동굴(Glacier Cave)’을 방문하기로 했다. 산 아래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차가운 온도에 준비해 온 머플러와 옷을 껴입는다. 준비해온 차림이 무색할 만큼 피부에 닿는 온도는 차갑다.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보 현수교인 ‘티틀리스 클리프 워크(Titlis Cliff Walk)’를 걸어 만년설과 빙하를 보기로 했다. 100m는 생각보다 길어 보인다. 발아래 시선을 두지 않고 앞만 보고 한발 한발 내디딘다. 무서움을 감추고 조심조심 움직여 본다. 짓궂은 관광객들이 중간에서 다리를 흔들어댄다. 출렁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겨우 버티는데 다른 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1m 폭의 현수교 위에서 500m 아래 지층을 내려다보며 웃고 떠드는 사이 빙하 위를 움직이는 체어리프트 ‘아이스 플라이어(Ice Flyer)’에 다다른다.
빙하 위를 움직이는 체어리프트 ‘아이스 플라이어(Ice Flyer)’를 타자 발 아래 빙하를 두고 하늘 위를 나는 듯하다.

발 아래 티틀리스 빙하를 두고 하늘 위를 나는 듯하다. 아이스 플라이어는 무료 놀이공원인 ‘글래시어 파크’까지 이어진다. 티틀리스 정상에서 빙하와 만년설을 맘껏 즐겨 본다.

한여름 대지는 초록으로 우거져 있고 이곳은 하늘 아래 구름에 머물러 있다. 조금 전 곤돌라에서 내릴 때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지만 눈 위를 마구 뛰다 보니 어느새 햇빛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덥다. 눈 위로 반사되는 햇살이 피부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관광객들이 티틀리스산 정상에서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좁은 자리에 서로 나란히 붙어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묻고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천사의 마을’이라는 뜻의 ‘엥겔베르크’ 티틀리스산은 스위스 중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3020m로 알프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티틀리스산 정상에서 빙하와 만년설을 맘껏 즐기고 있다.
눈 위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허기를 느껴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간이매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다. 실내의 그럴듯한 레스토랑보다 자연을 만끽하며 즐기는 것이 좋을 듯하여 사람들 틈에서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었다. 수프와 빵,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산 정상에서 즐기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신선한 공기가 음식의 맛을 더한다. 와인 잔에 비친 관광객의 표정은 평화롭다. 좁은 자리에 서로 나란히 붙어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묻고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이렇게 햇살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이곳 티틀리스는 슬로프 길이만 총 80㎞에 달한다.
티틀리스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중간역 ‘트뤼프제’에 자리 잡은 호텔엔 넓은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역인 ‘트뤼프제(Trubsee)’에서 내려 호수 산책에 나섰다. 호숫가는 정상과는 또 다른 자연을 선사한다. 넓은 대지 위에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그 너머로 호수가 햇살에 반짝인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호텔은 관광객들에게 넓은 테라스를 내어준다. 햇살에 노곤해져서인지 테라스에 있는 나무 침대에 잠시 누웠다. 정상에서 마신 와인 탓인지 만년설 위에서 뛰어서인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신발을 벗은 발에 닿는 찬바람에 잠이 깼다. 잠시였지만 낮잠을 즐기니 몸이 한결 개운하다. 피곤을 덜어내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오르기 전과는 다르게 주차장은 대형 버스와 다양한 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루체른으로 되돌아오는 길 내리쬐던 태양은 한풀 꺾이고 파란 하늘은 노을로 물들기 시작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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