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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의 저주’ 끊어라] ‘애물단지’될 뻔한 오벌 … 설계 단계부터 ‘다목적 시설’ 염두

입력 : 2017-10-20 06:00:00 수정 : 2017-10-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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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사후활용 먼저 디자인한 밴쿠버 / 소도시 리치먼드의 ‘과감한 선택’ / 교외 대신 신흥주택가 인근에 짓고 / 주민 원하는 생활체육시설 등 갖춰 / 커뮤니티 공간 활용… ‘사랑방’ 역할 / 지역민 단합 이끄는 랜드마크로 / 올림픽 전부터 개방해 친근감 형성 / 年 누적 이용객 무려 100만명 달해 / 시설 사용료 수입만으로 흑자 운영 2010년 밴쿠버올림픽을 기억하는 국내 팬들에게 리치먼드는 친숙한 이름이다. 캐나다 서부 최대도시 밴쿠버의 남쪽 위성도시인 이곳에서 펼쳐진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서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이 차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영광의 2010년 이후 7년 만인 지난 7월 초에 찾은 리치먼드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한 도시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변에 조성된 주택가는 평화로운 느낌을 줬다. 주택가 너머에는 커다란 하얀 지붕이 보이는데 바로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던 리치먼드오벌이다. 지금은 리치먼드 시민들의 ‘사랑방’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거대한 건물이 가변 구조물로 칸칸이 나뉘어 다양한 생활체육시설을 품고 있고 그곳에서 리치먼드 시민들은 웃으며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구석구석 자리 잡은 건강관리시설과 커뮤니티시설에서는 주민들이 만나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의 일체감을 나눴다. 올림픽 열기가 가득했던 곳은 이제 지역시민들의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으로 사용된 뒤 성공적으로 시민커뮤니티 시설로 전환한 리치먼드오벌 내 생활체육시설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다.
리치먼드오벌 제공
◆처음부터 시민시설로 디자인한 리치먼드오벌

동계올림픽은 종목 특성상 대형 실내경기장이나 스키장 등의 인프라가 다수 요구된다. 이 중 특별히 주최 측을 매번 곤란하게 하는 시설이 일명 ‘오벌(Oval)’로 불리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다. 한 바퀴 400m에 달하는 링크가 포함된 대형구조물이어서 건설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정작 대회가 끝난 뒤에는 활용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동계올림픽 주최도시들은 대부분 오벌 건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는 밴쿠버도 마찬가지여서 애초 밴쿠버 시내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SFU) 내에 마련될 예정이던 오벌 건설은 재정문제로 좌초됐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곳이 리치먼드시다. 리치먼드시는 밴쿠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건설 비용 일부 부담 등을 약속하며 경기장 유치에 나섰고 빙상은 밴쿠버, 스키는 휘슬러에서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은 리치먼드까지 포함해 3곳에서 개최됐다.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인 리치먼드시가 이런 도전에 과감하게 나선 것은 오벌을 도시의 ‘애물단지’로 만들지 않을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치먼드시가 오벌 설계 당시부터 지킨 핵심 개념은 ‘built for the Games, designed for legacy’다. 올림픽을 위해 건물을 짓되, 사후활용을 위해 디자인하라는 뜻이다.
리치몬드 오벌 피트니스센터.
리치몬드오벌 농구코트.

이를 위해 리치먼드오벌은 경기장이 아닌 ‘다목적 시설’로 세워졌다. 특히 설계단계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생활체육시설, 커뮤니티시설의 배치를 염두에 둬 공간을 배치했다. 사실상 시민시설로서의 가치를 더욱 우선해 지어진 셈이다. 존 밀스 리치먼드오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리치먼드오벌은 시민체육시설과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국제규격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으로 언제든 변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면서 “이 때문에 더 많은 건설비용이 투자됐지만 대신 리치먼드시는 시민시설과 훌륭한 경기장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민에게 받은 사랑으로 흑자까지 달성해

리치먼드오벌은 건립된 위치도 경기장보다는 시민시설로서의 가치를 우선했다. 대형이벤트를 위해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외에 짓는 대신 과거 창고 밀집지역이던 곳을 재개발한 신흥주택가 인근에 경기장을 세웠다. 덕분에 시민들은 굳이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걸어서 언제든지 리치먼드오벌을 방문할 수 있다.

여기에 리치먼드시는 올림픽에 앞서 시설을 사전 개방해 시민들이 리치먼드오벌에 좀 더 친근감을 갖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올림픽 경기장은 대회 이전까지 일반에 개방되지 않다가 대회를 마친 뒤에야 사후활용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리치먼드오벌은 올림픽을 2년여 앞둔 2008년 12월 미리 개방해 올림픽 3개월 전인 2009년 말 캐나다 빙속대표팀이 훈련용으로 사용할 때까지 일반인에게 완전개방됐다. 첫 출발부터 국제경기장보다 지역커뮤니티시설로 시작한 셈이다.
리치몬드오벌 올림픽기념관

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80% 이상이 리치먼드 시민으로 구성된 회원 6000여명이 체육시설 회원이고 연 누적 사용인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20만명인 리치먼드 시민 모두가 1년에 5차례는 리치먼드오벌을 찾은 셈이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해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춘 덕분에 시민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이렇게 오벌을 찾은 시민들이 낸 시설사용료로 리치먼드오벌은 운영비용 전부를 충당하고 흑자까지 내고 있다. 흑자 규모는 연평균 200만~300만 캐나다달러(약 17억~26억원)에 달한다. 밀스 COO는 “올림픽시설은 역사유산이기 때문에 없앨 수 없다”면서 “다만 운영비용 또한 시민의 재산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운영비용을 확보하는 등의 자생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리치먼드오벌 전경. 리치먼드오벌 제공
◆지역사회 단합·성공적 사후활용 모두 성공

이 같은 실용주의와 지역사회 우선주의는 리치먼드오벌의 사례 외에도 밴쿠버올림픽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올림픽 당시 컬링경기장으로 사용된 밴쿠버 올림픽센터는 대회 이후 시설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한 생활체육중심의 다목적 레크리에이션 특화 시설로 운영 중이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UBC 동계 스포츠센터는 아이스링크를 플로어로 변환이 용이하도록 설계해 아이스하키 외에도 체육시설과 콘서트, 뮤지컬 등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5000석 규모 이벤트홀로 사용 중이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휘슬러 전경.
여기에 휘슬러 지역에 세워진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휘슬러 올림픽파크 등의 경기장은 알파인스키 경기장으로 활용된 휘슬러 리조트와 연계해 체험형 관광지로 운영 중이다. 이미 세계적 스키리조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휘슬러는 이들 시설과 결합해 사계절 관광지로 성장했다. 이처럼 밴쿠버올림픽은 지역특성을 감안한 철저한 실용주의 운영으로 지역커뮤니티의 단합과 성공적 사후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리치먼드·밴쿠버·휘슬러=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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