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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자양분 먹고 큰 '괴물' 인종주의

입력 : 2017-11-11 03:00:00 수정 : 2017-11-1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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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지금 극단적 인종 차별 극우정당 득세 / 다시 고개드는 인종주의 탄생 배경 등 추적 / 과학이 어떻게 논리 제공해왔는지 고발 / 18세기 식물학자 린네, 인류 몇 부류로 나눠 / 나치, 우생학과 연결…'홀로코스트' 비극 불러 / 현대 과학자들도 공공연히 인종 우열 거론 / 저자 "인종 차이는 문화적 과정서 비롯된 것"
조너선 마크스 지음/고현석 옮김/이음/1만2000원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조너선 마크스 지음/고현석 옮김/이음/1만2000원


전 세계에서 인종주의가 다시 세력을 얻고 있다.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유럽에서 인종주의는 과학이라는 자양분을 공급받아 활개를 치는 중이다. 2017년 5월 프랑스 대선에서 반이슬람을 내건 프랑스의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이 대통령선거 결선까지 올라갔다. 독일에서도 지난 9월 총선에서 현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극우파 정당 ‘대안당’이 제3정당으로 부상했다. 대안당의 정책은 섬뜩하다. 이슬람 사원 금지와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 입국자들을 총살하는 극단의 인종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총선에서도 극우파 자유당이 제2의 정당으로 도약했다. 2016년 영국의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운 브렉시트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쏟아내는 인종주의적인 망언들은 점입가경이다.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은 대놓고 트럼프의 인종차별 정책들을 추종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생물학 교수인 저자 조너선 마크스는 이 책을 통해 과학은 역사적으로 인종주의에 논리를 제공해왔으며 초현대에 들어선 더욱 극성해 가고 있다고 고발한다. 이 책의 원제는 ‘Is Science Racist?’

책에서 저자는 린네, 뷔퐁, 다윈과 헤켈에 이르기까지 인종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했다. 18세기 중반 식물분류학자 칼 린네는 인류를 몇 개의 대륙 덩어리로 분류했다. 지리와 얼굴 생김새, 의복, 법률 제도 등에 근거해 사람을 몇 덩어리로 분류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은 다양한 종족들을 묘사하며 ‘인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후 19세기에 ‘인종들’이라는 표현이 책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종과 과학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인종주의의 가장 끔찍한 결과물인 홀로코스트는 우생학과 연결되어 있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 학살의 논리로 우생학을 도입했다.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사이비 과학이 지금도 저명 과학잡지 사이언스 등에서 인용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14년 미 뉴욕타임스는 심리학자 존 러슈턴을 소개하면서, 우생학적 논리를 보도했다. 인간 성기와 뇌 크기를 연구해 온 리슈턴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번식률은 높아지고 지능은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다시말해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고 성적으로 우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유전학자 제임스 왓슨은 2007년에 ‘선데이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흑인이 백인과 동일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수립된 아프리카 관련 정책들은 잘못됐다”라든지, “인종 간 지능의 우열을 가리는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안에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왓슨은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분자유전학의 아버지로, 30대에 노벨상을 받은 금세기 최고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또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같기를 바라지만 흑인 직원을 다뤄 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고도 말했다.

인종과 과학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인종주의의 가장 끔찍한 결과물인 홀로코스트는 우생학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너선 마크스는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음 제공
저자는 인종주의는 인간이 만들었다는 논지를 편다.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다. 다시말해 생물학 분류 방법인 ‘종’이라는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침팬지를 상이한 종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을 상이한 종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인간의 유전자 변이는 침팬지의 유전자 변이보다도 적다. 그런데도 현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인간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 무리의 사람들 집단을 사회학적으로 ‘인구’라는 관점에서 개념화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인종주의를 연구하는 우생학자, 분리차별주의자, 유전론자, 인종주의자들에게 개인자선단체인 ‘파이어니어 기금’이 연구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저자는 “계층 간 차이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인종 간 차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 역시 문화적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인종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 집단을 분류하고 계층화하는 이유,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종학이란 애초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사회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임금 착취나 결혼이주민 여성에 대한 학대 등 인종주의적인 폭력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매스미디어와 영화를 통해 조선족이 범죄인의 표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조선족=범죄인’이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알게 모르게 한국도 인종주의에 물들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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