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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듯하지만 고독한… 프랑스 사회를 투영하다

입력 : 2017-11-16 21:24:21 수정 : 2017-11-16 21: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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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국내 출간 기념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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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0구 오트빌가의 근사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평범한 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형용모순이지만 이 살인은 유난히 평범하지 않다. 보모가 자신이 돌보는 아이 둘을 살해한 것이다. 이 소설 ‘달콤한 노래’(방미경 옮김∙아르테)는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루이즈라는, 아이를 잘 돌 보는 천사 같고 살림을 잘해 요정 같다는 칭송을 한몸에 받던 보모가 일을 저질렀다. 왜 그랬을까.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아도 어느 정도 추론은 가능하지만 명확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사태의 시말을 적어가는 작가의 손끝을 따라가다보면 프랑스 사회의 소외된 계층, 여성들의 육아와 이로 인한 경력단절, 피상적으로만 맴도는 관계의 문제들을 곱씹게 된다. 무엇보다도 문 밖에 서 있는 소외된 자의 고독이 시리다.

이 소설은 모로코 출신 프랑스 여성작가 레일라 슬리마니(36)가 내놓은 두 번째 장편으로 지난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각별한 조명을 받았다. 공쿠르상 113년 역사상 12번째 여성 수상자이자, 이제 단 두 권의 장편을 낸 젊은 작가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아 수상작은 지난 1년간 35만부가 팔려나갔다. 국내 출간을 계기로 방한한 레일라 슬리마니가 지난 14일 프랑스문화원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3년 전 남편과 1주일간 방한한 데 이어 두 번째 한국행이다.

“소설 배경으로 설정한 파리 10구는 예전에는 이민자가 많이 살았지만 몇 년 전부터 부르주아 동네가 된 곳입니다. 저는 이 공간을 통해 잘살고 친절하며 친환경적이고 배려하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하게 고립돼서 전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같이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작금 프랑스 사회의 단면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더라도 뒤는 허전한, 단절되고 분리된 사회라는 생각입니다.”

슬리마니는 이 소설에서 보모 루이즈가 철저하게 소외된 고독한 처지에서 안온하고 따스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며 겪게 되는 단절과 부러움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슬리마니는 “오히려 베를린이나 뉴욕 혹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더 친밀감을 느낄 때가 있다”면서 “작금 프랑스 사람들은 상당히 복잡한 단절된 양상의 삶을 살아간다”고 소개했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17살 무렵까지 살다가 파리 정치대학에 진학하면서 프랑스로 옮겨온 슬리마니는 대학 졸업 후 아프리카를 취재하는 시사지 기자로도 살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를 지망했지만 감독의 지시를 받아야만 하는 시스템이 싫어서 기자 활동을 했고, 이 과정에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발견했다고 했다. 2014년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룬 첫 소설 ‘오크의 정원에서’를 발표해 화제를 모은 후 지난해 두 번째 장편을 써서 하루아침에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신데렐라가 되었다. 
14일 서울 프랑스문화원에서 한국 독자들과 만난 2016 공쿠르상 수상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는 “프랑스만큼 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며 “어떠한 것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르”라고 말했다.

슬리마니는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는 아이가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불러주는 노래이기도 하고, 잠이 들어 더 이상 반항할 수 없도록 부르는 노래”라면서 “자장가는 어찌 보면 공포를 부르는 검은 노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의 표제 ‘달콤한 노래’가 “겉으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만 실제 모습은 다른 것에 대한 은유”인 이유다. 그녀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낳고 침대에 눕힐 때 기쁘다기보다 평생 책임져야 하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면서 “이 소설을 통해 공포의 보편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슬리마니는 “소설을 쓸 때 우선적으로 독자가 재미있어야 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등장인물의 생생한 캐릭터 구축에 가장 신경을 쓴다”면서 집필을 시작하면 고립된 공간에 스스로 유폐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중해서 쓴다고 했다.

지난 6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장관급인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도 임명된 슬리마니는 “공쿠르상을 받으면 길거리나 레스토랑에서 수상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면서 “프랑스에서는 정치 문제를 다루듯 텔레비전에서 문학을 논의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소설을 간직하고 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페미니스트 남편이 6개월배기 아이 둘을 돌봐주는 덕분에 해외 출장을 다니고 한국에도 올 수 있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한국 음식을 자주 접하고 한국 영화도 즐겨본다는 슬리마니는 이날 만남에 이어 15일에는 이화여대에서 학생들과 만났고 17일 부산대 강연과 북콘서트(북티크 서교점), 18일 서울도서관 강연을 앞두고 있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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