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회집단의 객관적 특성을 반영한 단어뿐 아니라, 때로는 그 특성을 은유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정부와 사회에서는 정부 간 협약을 통해 도입한 외국 출신 이주노동자를 ‘손님 노동자’ 또는 ‘초빙노동자’라고 부르고 있다. 나치즘의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그와 같은 용어를 채택한 것이다. 독일인이 피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이주노동자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지 않고 손님처럼 존중하겠다는 언중(言衆)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렇지만 주인과 손님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해 살펴볼 경우, 그들을 독일 사회의 주인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영원한 손님’으로 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개념 역시 한국 정부와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채택한 단어라 할 수 있다. 다문화 개념은 10여년 전 행정용어·법률용어로 도입되었고, 그 후 일상용어로 퍼졌다. 출신국, 법적 체류자격, 민족, 인종 등을 따지지 말고, 내국인과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사회집단을 폭넓게 규정하는 개념이라는 점이 언중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말하는 이가 사용하는 ‘다문화’라는 용어에 듣는 이가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가끔 있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무심코 던진 “다문화, 손들어 봐라”는 한 마디에 해당 아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문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구분되고, 그 즉시 해당 아이들은 ‘다문화’라는 별명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교육현장에서는 특정 학생을 그가 소속된 사회집단 명칭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다문화’ 개념이 오용될 경우, 그 집단 소속원을 주류사회 성원과 구분하고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다. 다문화라는 호칭 또는 지칭에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는 이주민이 적지 않다. 물론 본인이 좋아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가 싫어하면 사용하지 않는 게 필수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
개인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해 배제하려는 의도로 어떤 용어를 사용한다고 느끼면 짜증 내거나 좌절하며 분노하기도 한다. 개인은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고려해 행동하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타인들이 자기를 부르는 용어는 그의 ‘사회적 정체성’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을 집단의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을 다문화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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