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이 주목하는 대목은 안시성의 젊은 성주 양만춘의 리더십이다.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그에게 반기를 들어 반역자로 몰렸던 양만춘이었지만 오로지 안시성을 지키기 위해 당나라와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보통 인물은 아닌 셈이다.
그런 영웅을 조인성이 연기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영화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표적 ‘꽃미남계’ 배우인 그를 장군의 이미지로 떠올리기 쉽지 않은 탓이었다.
영화 ‘안시성’에서 안시성주 양만춘을 연기한 조인성(가운데)은 “통증과 혹한을 이겨내며 동료 배우들과 ‘전우애’를 쌓았고, 위대한 승리를 기록한 작품을 무사히 마쳤기 때문에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자부심이 크다”고 밝혔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
스스로도 양만춘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조인성은 결국 ‘안시성’을 받아들였고 자신을 증명했다. 12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안시성’이 공개되자 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기대 이상’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양만춘의 덥수룩한 수염과 다소 ‘고운’ 목소리의 부조화가 극 초반엔 잠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서 조인성은 양만춘 그 자체로 영화를 조화롭게 이끌었다.
이제 관객들의 평가만 남았다. 조인성은 이를 영화 속 이세민이 쌓은 ‘토산’ 같다 했다. 초조하게 개봉(19일)을 기다리던 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엔 S기업 회장 아들, 다음엔 L기업 회장 아들, 그다음엔 H기업 회장 아들로 자기복제만 하다가 제 연기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렵겠지만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당시 양만춘의 나이가 30대 후반, 딱 제 나이였던 걸로 추정되고, ‘젊고 새로운 사극’이라는 분명한 기획 의도가 와 닿았기 때문에 감독님을 믿고 결정했습니다.”
조인성의 양만춘은 묵직한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평소에는 진흙탕에 빠진 할머니의 수레를 손수 밀어주고, 아기를 낳은 성민의 집을 찾아 직접 축하를 건네는 동네 아저씨 같은 성주이며 장수들과는 친형제 같은 우정을 나눈다. 그러다 전투가 시작되면 탁월한 리더십으로 군사를 지휘하고 위기의 순간 날렵한 몸놀림과 지략으로 승리를 이끈다.
“무게감으로는 이세민 역의 박성웅, 연개소문 역의 유오성 선배에 한참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게감을 덜고 평소엔 옆집 아저씨 같으면서 전투에서는 강인한 모습의 장군으로 양만춘을 표현하려 했죠. 카리스마란 원래 ‘신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란 뜻인데, 성민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양만춘의 카리스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진통제를 달고 살았습니다. 갑옷이 20㎏에 달하는데 그걸 입고 무기까지 들고 액션 연기를 하려니 몸에 무리가 왔던 거죠. 서로 파스를 붙여주고 효과가 좋은 진통제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실제 안시성 전투처럼 한여름부터 겨울이 올 때까지 촬영이 진행돼 무더위와 혹한을 다 겪었죠. 진짜 전장의 전우들처럼 함께 힘든 환경을 이겨냈기 때문에 ‘팀 안시성’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습니다.”
순제작비 185억원, 총제작비 215억원의 대작 ‘안시성’은 19일 개봉해 ‘명당’, ‘물괴’, ‘협상’ 등 쟁쟁한 추석 영화들과 경쟁해야 한다. 주연배우로서 흥행부담을 안고 있지만 ‘안시성’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조인성은 말한다.
“억지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이른바 ‘국뽕’ 영화가 아닙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승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뿐이니까요. 우리가 지금보다 더 넓은 땅을 호령했던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듭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양만춘과 고구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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