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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떡볶이, 첫사랑의 그 뜨거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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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8 22:15:52 수정 : 2018-09-18 22: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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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 앞에 연인인 듯한 남녀가 함께 서 있다. 녹색불이 들어오자 남자, 여자는 함께 뛰기 시작한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그러나 남자가 더 빠르고 여자는 조금 뒤처진다. 남자가 가쁜 숨을 헐떡거릴 때쯤 비로소 여자가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한다. 남자가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데 여자는 그제야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건널목에서 두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면, 같은 보폭으로 같은 방향으로 뛰어갔다면 그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을까.

하지만 감정이란 제 맘대로 움직이는 짐승 같은 법. 더욱이 그것이 첫사랑일수록. 가을이면 떠오르는 영화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첫사랑에 대한 남성 판타지물이라 할 수 있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있어 그것은 훨씬 더 충격적이고 결정적 사건이다. 상대보다 더 빨리 뛰었고, 그래서 서툴렀고, 그래서 타이밍을 놓친.

영화는 강릉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 학교 짱인 우영(김영광 분)은 전학생 승희(박보영 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승희를 졸졸 따라다닌 끝에 막 첫사랑을 키워나가려는 순간, 각박한 가정사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레 떠나고 만다. 오직 승희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노력 끝에 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입학하지만 넓은 캠퍼스에서 승희를 찾을 길이 없다. 우영은 고등학교 때 승희와 함께 먹던 떡볶이를 기억해 낸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떡볶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어찌 떡볶이를 잊을 수 있을까.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를 함께해온 떡볶이. 고등학교 담장을 몰래 넘어가 사먹던 떡볶이. 수업이 파하면 언제나 학교 앞에는 떡볶이가 강렬한 삶의 상징처럼 청소년기를 불태워주고 있었다. 붉은 양념 국물에 떡을 꾹 찍어 먹고, 튀김만두를 찍어 먹고, 순대를 비벼 먹고. 떡볶이는 청춘의 신산스러움을 붉은 눈물로 감싸주던 뜨거운 매혹이다. 첫사랑의 그녀는 함께 먹던 떡볶이로 기억된다.

그러나 대학에서 만난 승희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 승희가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쯤 이번에 우영이 여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재회할 때쯤 그들은 다시 시시한 것으로 싸우다 헤어지고 만다. 첫사랑은 나의 신분과 존재를 잊게 하는 것. 무언가 내 심장 아래께에 와서 쿵, 짐을 부려놓고 가는 것. 그것은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미칠 것도 같고. 아니 울먹이고 싶기도 하고 소리나게 웃고 싶기도 한 느낌. 설명할 수 없는 불이 가슴에서 이글거리다 가슴이 찢어질듯 붕괴될 때 세상은 남자에게 충고한다. 원래 첫사랑은 다 실패하는 거라고.

떡볶이 하나에 청춘의 설렘이, 떡볶이 하나에 첫사랑이, 떡볶이 하나에 뜨거운 눈물이 서려있다. 가을, 문득 첫사랑이 떠오르면 호호 불어가며 가슴 뜨거운 떡볶이 한 접시를 먹음직도 하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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