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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대학로를 다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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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8 23:23:53 수정 : 2018-12-18 23: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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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반촌’ 문화예술 꽃피워 / 현재까지 300년 넘게 지속 불구 / 우후죽순 상업시설에 정체성 잃어 / 문화예술 창조지구 제 모습 찾길  대학로는 일제강점기 때 이미 ‘대학통’이나 ‘대학가’로 불렸다. 1924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옛 서울대 문리과대학·법과대학 시절에도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1975년 서울대 캠퍼스가 관악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그 자리에 마로니에공원이 조성되고 연극·영화·콘서트·뮤지컬 등 문화예술 단체들이 자리를 잡았다.

더 거슬러올라가 조선 후기 반촌(대학로)에서는 가면극의 하나인 산대놀이가 펼쳐졌다. 영조 때 반궁(성균관) 경내에서 산대놀이를 하고 풍악을 울린 탓에, 성균관 관원이 처벌된 일이 있었지만 반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이를 시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산대놀이는 남대문과 서소문 밖, 애오개, 녹번 등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경기도와 지방에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 황해도봉산탈춤 등이 생겨났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반촌은 오늘날 대학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화예술을 꽃피웠고 지방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마로니에공원에 나가 보면 여기저기서 음악, 마술, 버스킹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이 거리에서의 문화예술 공연은 적어도 3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이성계는 천도하면서 성균관도 함께 옮겼다. 조선의 통치이념 유교를 보급하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성균관은 궁궐처럼 중국 주나라 제도를 따랐다. 주나라 대학은 사면이 물에 둘러싸인 곳(벽옹)을 택했지만 주변국 대학은 물이 반만 둘러싼 곳에 자리 잡았다. 그 물을 ‘반수’라 했고 대학은 ‘반궁’, 그 주변 마을은 ‘반촌’이라 칭했다. 물은 최고의 학문을 배우는 곳에 대한 벽사, 정화수뿐만 아니라 책의 습도를 유지하는 기능을 했다.

30년에 걸친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 재정이 바닥나고 학문 또한 황폐화된 고려말, 안향(1243∼1306)은 이를 바로잡고자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들여왔다. 성균관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산을 헌납하고 100명의 사노비를 면천시켜 보냈는데, 반촌 사람들(반인)이 이들의 후손들이다. 성균관의 관인이라 불렸던 반인들은 개경의 성균관이 한양으로 이전하자 다 함께 지금의 성균관 주변으로 이주해 왔다.

반촌은 창경궁에서 혜화동로터리를 지나 혜화문에 이르는 큰길 북쪽 지역이다. 이곳은 유생들의 하숙집이 되기도 하고, 성균관 내에서 금기시한 경전해석이나 시국토론의 장 역할을 했다. 정약용과 이승훈의 천주교 학습사건이 대표적이다. 반인 김석태의 집에서 발각되어 장소를 제공한 김석태는 곤장을 맞다 죽었고, 이를 슬퍼한 정약용은 그의 제문을 직접 썼다. 양반과 반인이라는 신분을 떠나 학문적 동지로서의 의리를 지켰다.

이곳엔 홍덕동천이 있다. 성균관 좌우에서 흘러내려 혜화문과 낙산 성곽 안쪽을 타고 청계천에 합류한다. 경성제국대학이 들어선 이후 확장 복개되었고, 훗날 지하철 4호선이 지나가면서 완전히 가려졌다. 방송통신대 앞에 물길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게 전부다. 일제강점기 때는 ‘대학천’, 옛 서울대생들은 이를 ‘세느강’이라 불렀다. 이때의 낭만을 간직한 학림다방은 아직도 대학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대학로는 1985년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소극장 밀집현상이 가속화했다. 초기엔 순수예술의 생산지이자 소비지로서 명성을 누렸지만 유입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카페나 주점, 노래방, 당구장 등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등 상업시설의 무분별한 영역 확장으로 문화예술 창조지구의 성격을 상실해 가고 있다.

다행히 방송통신대와 서울시가 대학로의 불필요한 담을 허물고 나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방송대는 사적인 역사관 건물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하고 전시실을 개방해 대학로의 문화공간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청소년 공연체험과 영상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대학로가 창의지구로서의 불야성을 이루며 본디 정체성을 되찾길 바란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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