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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났다고 좋아했는데…고교생 10명 여행갔다 참변

입력 : 2018-12-18 19:24:58 수정 : 2018-12-19 01: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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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펜션서 가스중독 추정… 3명 사망·7명 의식불명 / 오후 1시 거품 물고 구토 중 발견 / 경찰 “실내 일산화탄소 높게 측정” / 보일러 가스가 실내로 들어간 듯 / 학교에 개인체험학습 신청 후 여행 / 펜션 주인 보호자 1명과 사전통화 / 수능 후 高3 부실한 관리 도마에 “수능 끝났다고 좋아했는데….”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저동 A펜션에서는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현장감식을 벌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상자 이송 18일 강원 강릉시 저동 A펜션에서 구급대원들이 사고를 당한 학생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이날 A펜션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이 숨지거나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강릉=연합뉴스
이 펜션에서는 이날 오후 1시12분 수능을 끝내고 친한 친구들끼리 겨울 바다를 보러 온 서울 은평구 대성고 학생 10명이 입에 거품을 물고 구토 중인 상태로 발견됐다. 이 가운데 3명은 숨지고 7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펜션 주변 마을 주민들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학생들이 허무하게 숨져 안타깝다”며 “수능을 마치고 추억을 쌓고자 왔을 텐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현장에 나와 봤다”고 말했다.

강원도 강릉시 경포의 한 펜션 현장에서 소방관 등 관계자들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원인 추정 보일러 시설 18일 강원 강릉시 저동 A펜션에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이 숨지거나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사진은 사고가 난 펜션 전경과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LPG(액화석유가스) 보일러 시설물의 모습.
A펜션 소개 페이지 캡처
경찰의 초동 조사결과 사고 현장에서는 정상 수치(20ppm)보다 8배 정도 많은 155ppm의 일산화탄소 농도가 측정돼 가스중독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3시까지 학생들 움직임이 파악됐다”며 자살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3시45분 펜션에 입실한 학생들은 오후 7시40분쯤 바깥에서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김진복 강릉경찰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학생들은 2박3일 일정으로 해당 펜션을 찾았으며, 업주가 중간 점검차 방문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펜션 주인은 학생들만 펜션을 찾아 피해 학생 중 한 명의 부모와 통화한 뒤 숙박을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강원 강릉시 경포의 한 펜션에서 수능시험을 끝낸 서울 대성고 3학년 학생 10명 중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어 치료를 받는 가운데 해당 펜션 2층에 환기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사고가 난 펜션은 지난 7월 영업을 시작한 새 건물이다. 학생들이 투숙한 방은 복층 구조로, 취사도구는 인덕션 레인지이다. 방 앞에 있는 베란다에 보일러실이 있어 가스가 실내로 유입돼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장 조사를 한 소방 관계자는 “펜션 보일러가 베란다 쪽에 설치돼 있고 가스 연통이 바깥을 향하게 된 구조여서 맞바람이나 기계 고장 등의 영향으로 가스가 실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실내로 스며들어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며 “좀 더 정확한 조사를 해봐야 사고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경찰 관계자가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 10명이 사고를 당한 강원 강릉시의 모 펜션 2층에서 사고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성고 3학년 학생들은 이날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어서 오전 중에 모두 귀가해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사고 학생들은 모두 문과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과반 학생 학부모는 “아직 학교 측에서 공지가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고 걱정이 돼 학교에 와 봤다”고 말했다.

대성고 측은 일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일반전화와 휴대전화로 학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고 상황 파악을 위해 나온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와 경찰 관계자 등만 분주하게 오갔다.

강릉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던 학생이 고압산소치료센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를 놓고 수능 이후 학교 현장에서 고3 수험생 관리의 어려움과 무관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랫동안 입시준비 중압감에 시달려온 수험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정신적으로 풀어지는 경향이 높다. 여기에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고3 담임교사마다 수능 이후 학생들의 입시지도뿐 아니라 생활·정신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 교사나 학부모 등 보호자 없이 ‘개인체험학습’ 명목으로 고3 학생 10명만 멀리 여행을 간 데 대해 학교 측의 책임을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담임이 인솔하지 않고 보호자도 안 따라가는 1박 이상의 여행길에 아이들만 보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해방감에 뭘 하고 놀지 모른다”며 “아무리 체험학습 취지가 좋다 해도 ‘안전 담보’가 최우선 조건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교 측의 판단이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는 “학생들이 부모랑 함께 여행 간다고 학교에도 보고한 뒤 자기들끼리 가면 담임교사와 학교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다”며 “근본적으로 수능 이후 고3 수험생들이 교내외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연직 선임기자, 이강은·김청윤 기자 repo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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