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1년에 4명씩 3년간 증원 검토
李대통령 임기 중 22명 임명 가능
법원행정처 “1년 1명씩 순차 증원”
26명 전원합의체 판결 조율 난망
대법관 1명당 8.4명 재판연구관 둬
부장판사급 100명 인력 차출 필요
1·2심 법관 부족·재판지연 더 키워
‘사실상 4심’ 재판소원 위헌 논란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최대 쟁점은 대법관 증원이다. 상고심을 비롯한 재판 적체와 법관 부족 문제는 법조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된 과제였다. 다만 26명이라는 증원되는 대법관 숫자와 시점, 방식 때문에 정부와 사법부 간 이견이 팽팽하다. 여권의 대법관 증원 논의가 올해 5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 직후부터 급부상했다는 점에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목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를 비롯해 상고심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 없이 이뤄지는 대법관 증원은 자칫 사법 체계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하급심 부실·전원합의체 운영 우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1년에 4명씩 3년에 걸쳐 최종 26명까지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구상 중이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이 대통령이 임기 중에 임명하는 대법관이 22명에 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법관 과반 이상이 한 정권에서 임명될 경우 대법원이 정치권에 예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한 정권에서 다수 대법관이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고려해 국회에 제출한 대법관 증원 관련 의견서에서 소부 1개를 구성하는 대법관 4명을 1년 또는 2년에 1명 또는 2명씩 순차로 증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법관 26명 증원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히는 것은 사법제도의 중추인 하급심 심리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다.
행정처에 따르면 현재 대법관 1명당 8.4명의 재판연구관을 두고 있다. 재판연구관은 대개 14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부장판사들이 맡는다. 대법관 12명을 늘리기 위해선 약 100명의 1·2심 중견급 법관이 보조 인력으로 차출돼야 한다. 수도권 지법 1개 정도 규모의 인력이 빠지는 셈이다.

정작 법관 증원이 더 절실한 곳은 하급심 법원이다. 2023년 민사본안사건 상고심 평균처리기간은 7.9개월인 반면 1심 합의부는 평균 15.8개월에 달한다. 형사사건 역시 2023년 기준 상고심은 평균처리기간이 3개월에 그쳤지만 1심 합의부는 같은 해 6.9개월이 걸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견급 법관이 재판연구관으로 대거 차출되면 1·2심 약화와 지연 문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 1·2심 판결에 불만을 갖는 당사자가 늘어나면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심 사건도 덩달아 급증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에 사건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본인 사건의 1·2심 판결에 대한 판단이 아쉬워서 그런 것”이라며 “국민은 대법관이 증원되면 지금보다 본인 사건을 자세하게 봐줄 거라고도 기대할 텐데, 26명으로 늘린다고 사건을 더 자세하게 심리하거나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쓸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심리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민주당 방안대로 대법관이 늘어나면 쟁점이 복잡한 전원합의체 사건을 결론 내기에 너무 많은 숫자가 된다는 것이다. 한 고법판사는 “26명이 합의체를 운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합의체를 독일식으로 두 개로 나누더라도 양측에서 충돌되는 판결은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 논의가 돼야 한다”며 “다양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법리가 나올 것이라는 취지와 다르게 결론 도출이 너무 복잡해 기존 법리만 이어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7년 논쟁 ‘재판소원’ 결론 날까
민주당은 법원 판결을 헌법 소원 대상에 포함하는 이른바 ‘재판소원’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재판소원은 대법원과 헌재 간 오래된 갈등을 이어온 주제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은 7월 인사청문회에서 “37년 역사가 있는 쟁점”이라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드디어 논의되고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재판소원 도입은 법원이 법률을 잘못 적용하거나 절차를 어기는 경우를 바로잡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의 취지가 엇갈리는 경우를 방지해 혼란을 줄이고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를 촉발해 재판지연을 초래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대법원 판결에 불복해 헌재까지 사건을 끌고 가면 헌재의 업무가 가중되고 국민의 권리 구제는 심각하게 미뤄진다는 것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당사자들이 사건을 3심까지 끌고 가는 분위기 속에서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대부분 헌법소원까지 제기할 것”이라며 “당사자들의 법적 결과가 나오는 시점도 미뤄지고 변호사 비용도 더 쓰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소원 도입을 둘러싼 위헌 논란도 해소해야 한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는데, 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이 되면 법원의 사법권이 침해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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