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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무너지는 신뢰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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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비리·저축銀 부실·불교타락 3難
불신의 시대 극복할 진정한 리더 필요
최시중씨 등 현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 감방으로 직행하는 모습은 드라마 재방송 장면 같다. 임기 말 이런 ‘데자뷔’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주춧돌인 은행이 고객 돈을 빼돌린 저축은행 사태도 한국에서는 있음직한 사건이다. 그렇지만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 간부 승려들이 억대의 도박판을 벌인 모습은 ‘신선’했다. 승려 8명이 가부좌를 튼 자세로 호텔 스위트룸에서 도박을 하는 광경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의 근간인 정부, 금융회사, 종교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 기자가 아는 미국 친구들은 이러고도 어떻게 나라가 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끌끌 찬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국 친구들에게 반박한다. 미국은 어떤가. 정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총선만 봐도 금권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소득 상위 1%의 거부들이 슈퍼팩에 돈을 대주면서 선거 결과를 막후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국식의 정경유착은 아니지만 거부들이 자기네 입맛대로 정치판을 짜고 있다. 미국의 정치자금 내역이 투명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슈퍼팩의 핵심 돈줄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국에도 엔론 사태처럼 초대형 회계 부정 사건이 있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에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사고를 친 초대형 은행을 구제하려고 국민 혈세를 쏟아부었다.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은 이 와중에 수억∼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미국에서는 또 성직자의 성추문 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지고 있다.

허탈한 미국 국민은 이제 극단으로 가고 있다. 분노한 젊은층과 진보세력은 ‘월가 점령 시위대’에 몸을 던진다. 보수성향의 인사들은 ‘티파티 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정치인들도 이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 정치에서 중도파 의원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정치적 타협은 사라지고 있다.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어떤 법안을 통과시키면 상원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를 부결시켜 버린다. 상원에서 통과된 법은 하원에서 제동이 걸린다. 몸싸움만 하지 않을 뿐 극단적인 힘 대결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제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은 1973년부터 40여년 동안 미국 사회의 중추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40여년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 분야에 걸쳐 대체로 하향곡선이다. 지난해 6월 조사에서 국민 신뢰도는 의회 12%, 대기업 19%, 노조 21%, 은행 23%, 텔레비전 뉴스 27%, 신문 28%, 공립학교 34%, 대통령 35%, 대법원 37%, 교회 48%로 나타났다. 2002년부터 2011년 사이에 신뢰도가 15% 이상 떨어진 기관은 은행(-24%), 대통령(-23%), 의회(-17%)다.

유엔도 비슷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유엔이 2010년에 실시한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미국은 58%로 나타났다. 한국은 조사 대상 40개국 중에서 헝가리(40%) 다음으로 낮은 41%를 기록했다. 핀란드(82%), 덴마크(75%), 룩셈부르크(73%) 등 북유럽 국가들이 사회 주요기관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신 시대에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국가 전략차원의 담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현혹한다. 정치인이 국가와 사회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도 불신감에 빠져 있는 국민은 냉소를 보낼 뿐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해인 올해 한국과 미국에서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나쁜 지도자와 포퓰리즘이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 구조에 빠진다.

사회제도와 지도자에 대한 반감이 용솟음치더라도 참아야 하는 쪽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다. 올해 한국과 미국의 대선에서 사회시스템에 대한 불신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일도 국민의 몫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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