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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 (중)알맹이 없는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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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03 10:16:31 수정 : 2009-11-03 10: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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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친구 계속 생각나는데… 상담할 곳이 없어요" 서울 A중학교에서는 올 들어 두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심각성을 느낀 학교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사후 개입에 나섰다. 사후 개입이란 자살 문제 전문가를 투입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주변인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말한다.

2008년 아동·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23.7%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5.8%는 실제 시도한 경험이 있을 만큼 청소년 자살 문제는 심각하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 말 현재 24.8명인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2013년까지 20명 미만으로 줄인다는 목표 아래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내놓았고, 교육과학기술부도 정신건강검진사업과 생명존중교육을 하고 있지만 청소년 자살 예방 효과는 미미하기만 하다.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예산과 전문 상담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자살에 대한 사후 개입도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난 9월 천안 지식경제공무원연수원에서 교원들이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주관하는 자살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제공
◆사후 개입 지침 없어=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의 경우 사후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승희 한국디지털대학교 상담·청소년학부 교수는 “한 명이 자살하면 최소 주변 5∼6명이 고통을 받는다”며 “반드시 사후 개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연구에 따르면 주변인 중 자살자가 있는 청소년의 자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9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4∼6배 높아진다는 해외연구 결과도 있다.

생명의전화, 서울·수원 자살예방센터 등 일부 기관에서 사후 개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교장의 판단에 따라 몇몇 학교에서만 사후 개입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배주미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는 “교사가 아닌 외부인이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학교에서 껄끄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승희 교수는 “학교에 학생 자살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사후 조치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학생건강안전과 조명연 사무관은 “사후 개입의 필요성에 동감한다”며 “자살뿐 아니라 큰 안전사고가 났을 때 위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상담인력 부족=한국청소년상담원이 2007년 청소년 4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6.7%가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등 심리교육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수업시간에 자살예방 교육을 해 달라는 응답도 13.7%에 달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학급단위의 심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 중·고교 26개 학급 1200명을 대상으로 시범교육을 했다. 하지만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이 의무화돼 있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달리 자살 예방교육은 학교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교육이 형식적이거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과부는 지난해 197명, 올해 200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연수를 했지만, 전체 초·중등학교가 1만1160개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이들 교원을 강사요원으로 활용해 교사 교육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전문 상담교사도 부족하다. 전교생이 1000여명인 B중학교의 한 전문상담교사는 “한 달에 120명 이상을 상담한다”며 “학생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려면 상담교사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그래도 여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 학교는 상담실을 갖추고 있지만 전문상담교사가 상주하는 곳은 전체 초·중·고교 중 4.2%에 불과한 471개교뿐이다.

◆자살 예방대책 구호만=정부는 2004년 ‘자살예방 종합대책 5개년 계획’을 수립, 2010년까지 자살 사망률을 2003년 대비 20% 감소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대책 시행 후에도 자살은 줄지 않았다. 부처 간 협조 부재, 관련 예산 부족 등이 실패 이유로 꼽혔다.

그후 유명인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2007년 정부는 총리실 주도로 새로운 자살예방 종합대책 수립에 나섰고, 2008년 ‘제2차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총리실은 일부 조정 기능만을 담당할 뿐 주무기관은 복지부로 바뀌었고 대책 시행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산 확보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자살 예방 대책이 성과를 거두려면 올해 13억원, 내년에는 87억원의 직접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배정된 예산은 올해 5억3500만원, 내년에는 원래 계획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7억3500만원에 불과하다.

자살예방법에 대한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돼 2006년 안명옥 전 의원이 입법안을 냈고, 지난해와 올해에도 임두성 의원, 강창일 의원 등이 법안을 냈지만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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