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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흙과 누울 땅 없는 사람들” 내 그림서 위안을 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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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화가’ 황재형 3년 만에 서울 나들이 “배부른 자에겐 각성을,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휴식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대상의 묘사가 아닌 침묵의 무게, 존재의 진정성을 담아 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재형 작가는 “설령 예술성은 없어도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리얼리스트로 존재하고 싶다”고 말한다.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다 1983년 돌연 강원 태백으로 이주해 탄광촌의 삶과 풍경을 화폭에 담아 온 ‘탄광촌 화가’ 황재형(58)이 3년 만에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28일까지)을 열기 위해 모처럼 상경했다.

“요즘 서울이 (태백보다) 더 탄광 같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더 광부 같은 느낌이 듭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위안과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는 탄광촌에서 한두 달씩 일하면서 광부 체험을 했다. “어느 날 한 광부의 집에서 라면을 먹게 됐지요. 아내는 가출해서 없는 휑한 집 마루에서 고추가루 등 묵은 때가 낀 밥상에 차려준 라면을 먹으려니 갑자기 토역질이 나는 거예요.”

그는 그때 자신이 여전히 관찰자임을 깨닫고 태백에 주저앉았다. 탄가루 날리는 막장에서 밥 한 숟가락의 의미를 일깨우는 도시락 먹는 탄부, 태백의 칼바람과 진눈깨비로 더욱 을씨년스런 철암역 풍경 등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림들이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선 그의 감성은 작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꽂혀 있다. “골목길이나 텃밭 같은 것에 자꾸 눈이 갑니다. 보기엔 남루하고 누추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느껴져요. 과거엔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게 꽉 차 있었는데 요즘엔 길가의 작은 돌멩이나 담장 밑 꽃 한송이, 광부들이 쓰다 버린 물건까지도 예사롭게 안 보여 그리고 있죠.”

◇메탈지그와 선탄부
붓 대신 나이프로 거칠게 터치하고, 유화 물감뿐 아니라 탄가루와 흙 등을 발라 거칠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살려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여전하지만 그림의 소재는 다소 변화가 느껴진다. 탄광이 문을 닫자 그 빈자리를 마을과 자연 풍경이 메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색조도 탄가루 등을 이용한 검은 톤 위주에서 벗어나 따듯하고 밝아졌다.

“어느 날 밤 눈보라가 치는 풍경을 보고 너무 좋아서 다음 날 아침에 그림을 그리러 가보니 어제 본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드러나는 건 순간이고 모든 건 내재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집과 산에 내재된 광부의 표정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상을 관조하는 원숙한 시각이 태백풍경으로 승화되고 있는 셈이다.

관조적 풍경은 여러 작품에서 읽힌다. 선탄부의 얼굴을 배경으로 인조미끼를 배치한 작품이 대표적 사례다. “욕망의 끈을 상징해요. 우리는 그 자체로 온전한데 헛것을 동경하는 데서 슬픔이 시작되지요. 인간의 삶은 누구나 정당합니다.”

그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여전히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사람들을 위한 위안과 격려다.

“작가는 자신이 갖는 고유의 정신성을 사회와 소통하기를 꿈꾸는 자들이지요.” 그는 사회의식에 지배되는 종속적 미술운동을 거부한다.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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