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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50〉‘1년 중동여행’ 대장정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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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9 20:59:34 수정 : 2014-01-13 09: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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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람! 한마디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 그립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중국에서 시작한 여행이 아프리카까지 이어져 어느새 1년이 흘렀다. 한국에서라면 나의 시간이 멈춰 있었겠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시작된 중동여행은 이란,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터키를 거쳤다. 그리고 유럽을 지나서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모로코, 모리타니, 세네갈, 감비아까지 나아갔다. 이슬람 국가를 처음 접해보면서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혹은 다르게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깨쳤다.

편향된 언론보도 때문에 한 면을 치우쳐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접한 것들이 전부일 수는 없다. 그 또한 한 일부분일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평범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이념과 종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단순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일 뿐이다. 무엇이 이들을 갈라 놓고 무엇을 막아 놓았던 것일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여행에서도 같다.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한국에서의 일상과 같다. 그러나 손으로 먹고, 차도르를 두르고 다른 말로 대화를 하는 것은 낯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낯선 일도 익숙해져만 갔다. 이런 익숙함 때문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일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더 나아가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는 다음에 갈 나라를 선택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검은 차도르를 휘날리며 다니는 여인들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화려함을 숨기고 있었다.
가고 싶은 나라는 많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욕심은 무엇을 성취해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어 나를 힘들게도 한다. 여행에서 욕심을 부리면 끝도 없이 많은 것을 봐야 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많은 나라를 탐험해야 한다. 이것만큼 여행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나라에 가면 이것은 꼭 봐야 한다’는 것은 없다.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안 봤다고 프랑스에 간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도에 가서 타지마할을 안 봤다고 인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것은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 필수처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것을 못 보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이런 여행관이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일본을 경유하는 비행기편이였다. 처음에는 시베리아로 가서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네갈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서의 행정절차가 까다로워 비행기편을 택하고 말았다. 러시아 대사관을 두 번이나 갔지만 러시아를 거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예약증을 요구했고, 그 예약을 다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또한 쉽지가 않다. 이미 나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편하게 귀국하기 위해 비행기편을 선택했지만, 이 역시도 중간에 경유를 하고 공항 체류도 해야 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
짐을 꾸려서 공항으로 가는 길이 어색하다. 공항을 가는 것은 오랜만이다. 세네갈 공항은 버스 터미널처럼 작으면서 보잘것없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네갈에서는 프랑스 파리로 가는 직항이 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비행기표를 가진 사람뿐이다. 작별인사는 길에서 하고, 표 검사를 받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새벽에 나온 공항은 조용하면서 쓸쓸했다. 단순히 세네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떠나고, 중동여행을 끝내는 나에게 공항은 유난히 쓸쓸히 보였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를 스스로 의심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중동에 대한 각자마다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그런 선입견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놓치게 한다. 이젠 어떤 것에도 선입견을 두지 말고 바라봐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나는 이런 거 못해’,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거야’ 식의 생각들이 그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하고, 또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만 한다. 이것이 여행의 첫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이틀의 시간이 있었지만, 시내로 나가진 않았다. 공항은 어딘가로 떠나는, 혹은 떠났다가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기다림이 있는 곳이다. 그 기다림은 설렐 수도, 아쉬울 수도, 다급할 수도, 지루할 수도 있다. 여행을 위해서 혹은 일을 위해서 사람들은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있다. 가족 혹은 친구, 연인과 아니면 나처럼 혼자 기다린다.

중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흙빛 건물.
이곳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붉은 작은 전구가 반짝이는 것을 보니,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 겨울에 반팔을 입은 사람, 털모자에 가죽재킷을 입고도 꽁꽁 동여 맨 사람, 무슬림 복장의 사람,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을 입은 사람, 나처럼 허름한 옷의 여행자 등 사람들도 다양하다.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이 생각나게 만든 것은 하루가 지난 후였다.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면서 공항 짐 카트를 밀고 다녔다. 밤이 되면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기다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쪽잠을 청한다.

공항의 깨끗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놀랐다. 그동안 봐왔던 거울이 뿌옇던 탓일까. 주위 사람들이 나보다 더 까맣기 때문에 내가 하얗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까만 내 얼굴이 깨끗한 거울에 비치니 나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낯선 모습을 보고 더 놀라게 될 가족과 친구들의 표정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런 기대와 설렘이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누르고 있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덧붙인다면,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중동을 어떻게 여행해?”, “그곳에서는 뭘 먹고 살아?” 등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가 궁금한 곳이 바로 중동이었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여행을 이렇게 오래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살람’ 한마디에 모두들 웃으며, 인사해 주는 곳이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끝>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의 저자 grimi79@gmail.com



〈강주미의 ‘살람 중동’은 이번 주로 끝을 맺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강주미의 ‘올라 카리베(Hola Carribe)’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올라 카리베는 스페인어로 ‘안녕 카리브’라는 뜻입니다. 필자가 9개월간 카리브해 섬나라 국가들을 여행하며 겪었던 이야기와 현지 문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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