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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가을비 내리는 아침,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이 다리 강북 쪽에 있던 무학여고생들이 탄 버스가 추락해 꽃다운 소녀 8명이 숨졌다. 등굣길에 그렇게 무참히 갔다. 희생영령 유령비가 성수대교 북단에 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사고 5년 후 위령비 앞에서 먼저 간 딸을 뒤따라갔다.

1999년 여름 씨랜드 화재로 꽃봉오리 같은 유치원생 19명이 저세상으로 갔다. 말만 청소년 수련원이었지 양어장을 수리한 가건물이었다. 여섯 살 난 아들을 잃은 김순덕씨는 메달과 훈장을 반납하고 조국을 등졌다. 아이돌 그룹 HOT는 ‘아이야’라는 노래를 만들어 어린 영혼을 위로했다.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도록 누가 허락했는가/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 텐가?”

2014년 봄 시퍼런 바닷물이 배를 덮친 순간 안산 단원고 아이들은 애끊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가슴 절절한 이 문장을 맨눈, 맨정신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면 몰라도. 슬픔이 아픔이 되고 온몸이 무너져 가루가 되는 느낌일 것이다. 강민규 단원고 교감이 남긴 유서엔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제자들 곁에 뿌려달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무게는 우주보다 무겁고 깊이는 바다보다 깊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유치원생도 보내고 여고생도 보내고 또 고교생들을 보낸다. 20년간 달라진 것이 없다. 어른들은 탐욕스럽고 정부는 주먹구구다. 진도 여객선 참사도 다시 잊혀질 것이다. 선장과 선주, 돈 먹은 해수부 관리들을 구속하고 눈치만 백단인 고위직 공무원 몇 명을 속죄양으로 던지고 망각 속으로 넘어갈 것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뒤에도, 씨랜드 참사 뒤에도 그랬으니. 그래서 더 슬프다.

세월호 참사에서 숨진 최혜정 교사의 가족은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 사고가 정리가 되면 1999년 씨랜드 화재로 아들을 잃은 엄마가 이민 간 것처럼 제2의 이민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루 세 끼 먹는 나라보다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살아남은 자들은 위로받아야 한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미개한 국민정서” 운운하다니, 별나라에서 온 건가.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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