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경쟁보다 정확성으로 신뢰 회복해야 요즘은 날이 저무는 게 두렵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중 단 한 명도 살아 있다는 소식 없이 시간만 흘러서다. 행여나 생존자 구조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퇴근 후 집에서도 TV 뉴스특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슴만 아픈데, 뭐 하러 보느냐”라는 아내의 핀잔에도 리모컨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고가 상상할 수 없는 대형 재난이었기 때문일까. 일부 방송의 부주의한 보도와 잇따른 오보는 실종자 가족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종편채널 MBN은 18일 ‘뉴스특보’를 통해 침몰 현장 민간 잠수부라 주장한 홍가혜씨의 인터뷰 논란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홍씨는 인터뷰에서 “해경이 민간 잠수부들의 구조를 막고 위험하니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 “세월호 생존자 확인하고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 후 홍씨의 발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진도 현장에서는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왜 민간 잠수부의 진입을 막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 방송은 사투를 벌이는 구조대원들을 절망케 했다.
방송들의 ‘오버’는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일부터 잇따랐다. 16일 ‘MBC 이브닝 뉴스’는 실종자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을 상황에서 “세월호가 인명피해 시 1인 최고 3억5000만원을 보장하는 선박보험에 가입돼 있다. 학생들도 단체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생각 없는’ 보도는 수온에 따른 생존시간을 분석한 미국 CNN방송과 비교되면서 “진정한 국격의 차이가 보인다”는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다. 종편채널 JTBC도 사고 생존자 인터뷰 중 어이없는 질문으로 구설에 올랐다. 앵커가 생존 학생과 전화 인터뷰 중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학생은 울음을 터뜨리며 “못 들었다”고 말하곤 패닉상태에 빠졌다. 손석희 앵커가 이후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필요치 않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박태해 문화부장 |
학자들은 언론들이 재난보도의 기본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속보가 업데이트되는 상황에서 속보 경쟁을 하기보다 정확한 보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현장에서 정확한 취재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속보 경쟁을 하다 보면 오보를 피할 수 없다”며 ”늦더라도 정확한 보도와 실종자와 그 가족의 아픔과 인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들의 부적절한 보도가 잇따르자 기자협회가 ‘참사보도는 신속함보다는 정확성이 우선돼야 한다’라는 요지의 재난보도 준칙 제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재난보도 준칙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재난참사 때 마땅한 보도기준이 없다는 여론으로 제정이 추진됐으나 결실은 맺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기본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언론 역시 이 번에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기본을 돌아봐야 한다.
박태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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