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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윤의 내밀한 미술사] <5> 예술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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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0 21:39:59 수정 : 2014-12-01 12: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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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된 무결점 미인… 자연 그대로의 여인 … 진정한 ‘美’는?
지나가는 귀동냥으로 들은 예술과 거짓말에 대한 이 짧은 명제는 강한 힘을 갖고 있었고, 예술 작품을 대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되새겨보는 길라잡이와 같은 문구가 되고 말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은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승과 같은 존재이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만 할 완전한 모습은 곧 자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같은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미를 느끼게 하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고, 너무 밋밋해서 보고 있기가 지루할 만큼 단순한 것이며, 손질이 덜 된 미완성의 상태를 말한다. 어쩌면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과 거짓말에 관한 명제는 오랜 시간 동안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예술론에서 벗어나 그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즉, “예술은 거짓말이다”라는 명제를 빌려 다시 예술과 자연의 문제를 되짚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아무런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예술이 완성될 수 없고, 그 속에서 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인식하는 자연은 예술이 생성된 뒤에 비로소 생겨나게 되고, 그 근본적인 힘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적인 거짓말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도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의 모습은 결코 완벽한 미가 아니라고 깨닫고 있었다. 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힘이 필요하고, 결국에는 미의 총체적 요소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예술가의 능력이 있어야지만 불완전한 자연의 미는 수정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하고 고귀한 예술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티치아노의 ‘플로라’(1515년쯤, 캔버스에 유채, 63×79㎝,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의 미술 애호가들은 티치아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여인의 모습에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특히 그 어떤 결점도 찾아 볼 수 없는 모델들의 모습에서 완벽한 미를 재현하려 했던 예술가의 노력이 보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러한 미의 개념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좀 다른 각도에서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외모, 즉 손대지 않은 자연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형 외과의들의 판단과 시술에 의해 원래 갖고 있던 외모의 결점을 보완하고, 그것을 통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미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과는 구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예술작품이 아닌 자신의 외모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예술가의 아틀리에는 현세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적인 미인들의 초상화가 제작되는 곳이었다. 특히 인체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된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베네치아의 천재 화가 티치아노는 여인들의 달콤하면서도 뇌쇄적인 미를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우르비노 공작과 같은 당시의 미술 애호가들은 티치아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여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작품을 걸어두고 은밀하게 여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모델들에게 천상의 우아함을 덧입힌 거장 라파엘로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명의 미인을 그리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미인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탄식이 나올 만큼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들은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저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종의 이데아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녀들의 미를 보는 것입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불완전한 자연의 모습 속에서 완벽한 미를 발견해 낼 것, 그리고 화폭 위에서는 그 모습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아름답고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짓말을 할 것, 이 두 가지는 위대한 예술가가 지녀야 할 덕목이었던 것이다.

렘브란트의 ‘목욕하는 다이아나’(1630년쯤, 에칭, 17.815.9㎝,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렘브란트의 모델은 이상적인 미와는 거리가 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내추럴리즘은 당시의 비평가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정반대의 취향은 존재한다. 렘브란트의 경우 불완전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시켰고, 부족함을 보완하여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그 어떤 장치도 작품 속에 만들어 놓지 않았다.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충실한 나머지, 결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온갖 주름과 늘어진 살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말았다. 예술적인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렘브란트의 정직함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적어도 티치아노의 무결점 미인과 비교해보면 렘브란트가 그린 여인의 누드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싶을 만큼 거슬리게 보일 수도 있다.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시인 안드리스 펠스는 렘브란트가 여성의 모습을 통해 나타내려 했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늘어진 가슴, 못생긴 손, 게다가 상의를 졸라매서 생긴 허리 부근의 끈자국과 종아리에 생긴 스타킹 밴드 자국의 예를 들어,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술‘로 나타났을 때의 참담한 결과에 대해 탄식했다. 여인의 신체적 결점을 그대로 드러낸 과도한 내추럴리즘은 늘 ‘자연’과 ‘미’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예술가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집착했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야망있는 예술가가 발휘하고 싶은 반항과 도전 정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미’의 정의를 둘러싼 전통적인 담론에 대한 대항이었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가치를 뒤집는 한판승을 벌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정설처럼 믿었던 미의 법칙과 이론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의 모습에만 천착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름과 피하지방이 민망할 만큼 솔직하게 드러난 렘브란트의 누드는 예술적인 거짓말을 통해 만들어지는 통속적인 ‘미’의 개념을 뛰어넘어, 보는 이들에게 ‘미’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묻고 있다.

사뮈엘 판 호흐스트라턴의 자화상(1678년) 렘브란트의 대표적인 제자로서 미술 이론가로도 활약한 그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안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렘브란트의 제자이며 미술 이론가였던 사무엘 판 호흐스트라텐은 젊은 시절 미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모델로 그리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울퉁불퉁한 종아리에 스타킹 밴드 자국이 있는 여성들을 모델로 고르는 것을 피하고, 마을에서 미모를 자랑하는 모델들을 골라 그릴 것을 권고하였다. 덧붙여서 위대한 화가는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들을 그리기 위해 이상적인 모습에 가장 가까운 여인들을 눈앞에 두고 그렸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아름다운 모델을 기용하는 것이 작품의 미적 가치를 향상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했던 호흐스트라텐이었지만, ‘예술가가 창조하는 미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릇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신이 창조한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환상을 버리는 것이 좋다”라고 화가 지망생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남겼다. 신의 창조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 좋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적어도 렘브란트는 왜 여인의 누드를 그리면서 예술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숨겨진 의도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미를 추구하기 위해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에는 그것이 예술가들의 숙명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양정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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