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도 ‘구라파’ 작가가 있다. 국내에서는 성석제 천명관 이기호에 이어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의 청와대 습격 모의를 다룬 최민석이 떠오른다. 스웨덴 출신 능청스러운 입담의 주인공은 요나스 요나손(53)이다. 이 남자,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 직접 미디어 회사를 세워 직원을 100여명이나 거느리는 성공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허리가 아파’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로 작심했다. 그 첫 결실이 2009년 출간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작품인데, 인구 900만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120만부 넘게 팔렸고 41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번 달 첫째 주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동명의 영화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열린책들)가 궁금한 배경이다.
‘놈베코’라는 문맹의 여자 아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게토의 공동 분뇨 수거인이었다. 흑인들만 따로 분리해 거주지역으로 지정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소웨토에서 똥을 치우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 여자아이는 수(數)를 헤아리고 계산하는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똑똑했지만 아무도 그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다이아몬드 주머니를 차고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이 여자 아이가 남아공 핵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연구소에 기가 막히게 억울한 사연으로 들어간다. 청소부 역할이다. 이곳에서 우연히 여분으로 만든 원자폭탄을 알게 되고, 탈출할 때 잘못 바뀐 우편주소로 인해 그네의 소유가 돼버린다. 바야흐로 3메가톤급 원자폭탄을 소유한 놈베코의 활극이 펼쳐진다. 여기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두 요원이 가세하고 스웨덴 국왕제를 극렬히 반대하는 한 남자의 2세들과 연결된다. 후일 놈베코가 스웨덴 국왕과 총리에게 숨가쁘게 털어놓은 이 대사에 그 파란만장한 사연이 함축돼 있다.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 기자 출신인 그는 시사적인 안목으로 세계 정세를 파악하며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포복절도할 풍자를 구사한다. |
이처럼 사건들을 간단히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화려한 여정은 충분히 짐작될 만하다. 하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돼서 읽다가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피로할 정도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요나스 요나손의 바탕 생각을 간파하면 그리 휘둘릴 까닭도 없다. 요나손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를 포함해 나라와 세계가 처해 있는 조건에 대해 소설을 통해 발언하고 싶은 것이다. 요나손 소설의 신랄한 풍자는 바로 이러한 비판정신 때문에 더 우스꽝스럽고 빛이 난다.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나, 스웨덴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비판과 중립국을 지향하는 이 나라의 무장을 강요하는 국제정세, 나아가 핵으로 장난을 치듯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태를 역설적인 어법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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