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위압적인 것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다. 청와대는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백악관의 총면적은 7만3000㎡, 청와대가 25만㎡이다. 인구와 국력을 뺀 단순비교로도 세 배가 넘는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 큰 차를 타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의 거리다. 미국 백악관이나 프랑스 엘리제궁, 영국 다우닝가 10번지는 참모들의 방이 바로 붙어 있다. 멀어도 5m가 안 된다. 청와대가 500m이니 백배나 더 먼 거리다.
그래서 이런 일도 벌어진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보고했다. “서면보고를 안보실장이 올리자마자 10시15분에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셔서… 저희들이 계속 20∼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다. 그 당시에 대통령이 어떤 일정이 있는지 저하고 관계된 일정 외에는 잘 모르겠다.” 지난 4월16일 그날이다. 단원고 학생 등 300명이 넘는 생명이 진도 앞바다로 스러진 날,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요즘은 달라졌을까.
대통령과 비서실장, 장관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2기 내각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장관과 함께 서울대 총장, 국정원장은 대통령으로부터 6m 정도의 거리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때 임명장을 주는 거리는 3m 정도였다. 대통령과 장관 간 거리가 현 정부에서 두 배 멀어진 셈이다. 이 정부에서 장관이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도 못한다는 아우성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추가된 무대 시설이 있다. 바로 붉은색 카펫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붉은색 카펫 위에 서 있었다. 이것은 지난해 3월 임명장을 수여하는 날에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복지부 장관 임명 때 등장했다. 비서실장이 허태열에서 김기춘으로 바뀌어서 그런가.
대통령과 임명장 받는 사람을 구분 짓는 그런 무대장치, 대통령과 참모 간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는 발상을 낸 사람은 누구일까. 미국 대통령의 ‘주먹인사’에 시기심이 생겨서인지 모르겠다. 임명장을 주는 장면의 신문 사진을 보고 불현듯 솟아오른 소회가 그렇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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