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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뽑지 말거나, 추첨으로 뽑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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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31 23:54:51 수정 : 2014-07-31 23: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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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 4로 끝난 7·30 재보궐선거의 씁쓸한 뒷맛…
유권자 안중에 없는 ‘히딩크 선거’를 언제까지 볼 것인지
정치는 언어의 마술이다. 말로 살고 말로 죽는다. 새누리당의 11 대 4 압승으로 끝난 7·30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말잔치가 요란했다. 압권은? 아무래도 ‘김포의 히딩크’를 꼽게 된다. 실로 기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어제 동반 퇴진했다. 필연적 귀결이지만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 김 전 대표의 화술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김두관 후보를 ‘김포의 히딩크’라 명명했다. ‘철새’ 비판을 월드컵 4강 명장 히딩크를 오버랩시키는 화법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경기 김포 패전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순발력은 백미였다. 이제 누가 있어 그를 대신하랴.

그런데 왜 히딩크 화법이 빛을 못 본 걸까. 문제가 하나 있어서였다. 초등학생도 익히 아는 문제다. 정치권만 깜깜하다. 1반 아이들이 반장 뽑는 선거를 한다고 치자. 1반에 아무리 인재가 없어도 2반에서 반장을 꿔오지는 않는다. 대의민주제 요체도 여기에 있다. 선거란 우리 대표자를 뽑는 민주 절차다. 대한민국이 인물난을 겪더라도 버락 오바마, 아베 신조를 꿔오지는 않는다.

중앙 정계는 이 이치를 관행적으로 묵살해 왔다. 전략공천이 뭔가. 중앙당 파벌이 제멋대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 본질은 독일 정치 이론가 로베르트 미헬스가 지적한 ‘과두 지배의 철칙’이다. 지역 민심은 안중에 없다. 히딩크가 곳곳에 출현할밖에. 공직선거법도 부조리를 거든다. 피선거권을 규정한 선거법 16조는 지방의원·단체장에겐 지역적 자격 제한을 하면서도 국회의원에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국회의원 선거에선 2반 아이도 얼마든지 1반 반장을 할 수 있다.

김포만인가. 이번 출마자 중 해당 지역 선거권이 없어 투표를 못한 후보가 8명이나 됐다. 나경원, 권은희 등 여야 당선자도 명단에 들어 있다. 현실 정치가 얼마나 기발하게 돌아가는지 웅변하는 블랙 코미디다.

요점을 간추리자. 대체 언제까지 이런 꼴불견을 봐야 하나. 타개책이 없진 않다. 적어도 둘은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뽑지 말거나, 추첨으로 뽑거나’다.

첫째 ‘뽑지 말거나’는 과격하지만 실행은 매우 쉽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대개 정치권에 귀책 사유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10개 지역은 현직 사퇴, 5개 지역은 당선 무효형 등으로 빈자리가 났다. 정치권 허물로 국회 의석에 생긴 구멍들이다. 왜 국비를 들여, 유권자 다리품을 팔아 그 구멍을 메워줘야 하나. 정치권과 지역구에 공동 책임을 지우는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구멍을 안 메우는 것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장점이 많다. 선거비용도, 세비 낭비도 절감할 수 있다. 다른 기대 효과도 짭짤하다. 그러잖아도 비생산적인 정치 시스템이 선거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는 부작용을 덜 수 있다는 점이 단연 돋보이는 매력이다. 19대 국회는 5월2일 무더기 법안 처리 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고장난 선풍기다. 왜? 6, 7월 선거일정이 크게 작용했다. 선거가 외려 화근인 것이다. 공직선거법을 매만져 재보궐선거만 철폐해도 여의도는 변하게 마련이다.

둘째 ‘추첨으로 뽑거나’는 해당 지역 주민을 추첨으로 뽑아 구멍을 메워주는 방법이다. 이 역시 경제적 대안이고, 이론적 근거 또한 튼실하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다니엘 베사이드는 선거의 다수결 원리를 비판하면서 ‘추첨제’를 강조하곤 했다. 이념적 대척점에도 동조자가 많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거침없이 말한다. “시민을 배심원처럼 무작위로 선출해 의원으로 세우자”고.

선거는 중요하다. 재보궐선거도 그렇다. 민심 향배를 알려주는 순기능은 포기하기가 너무 아깝다. 하지만 부작용과 역기능도 엄밀히 따져볼 때가 됐다. 선거가 사회 동력을 갉아먹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면, 재보궐선거쯤은 접는 용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엔 겁나는 경고장이 될 것이다. 정치문화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덜 못난 놈’이 선거에서 이겼다고 설치는 꼴도 덜 볼 수 있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 ‘히딩크 선거’를 덜 보게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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