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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가치 '이순신', 400년을 관통하다

입력 : 2014-08-06 22:04:28 수정 : 2014-08-07 13: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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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리더십’ 상징… 시대 뛰어넘은 행적 좇기 열풍
상사병에 걸린 처녀가 있었다. 처녀가 사랑한 남자는 이순신 장군. 이순신은 처녀의 사랑을 단 하룻밤 받아주고, 호국용을 얻는다. 경북 선산에 전해지는 설화다. 1968년 서울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상이 섰다. 임금마저 버리려 했던 나라를 지킨 무장의 기상이 넘쳐나는 동상이다. 2001년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를 발표했다. 김훈은 ‘고뇌하는 인간’에 무게를 둔 이순신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 섰다. 400년을 넘게 불멸하며 이처럼 다양하게 해석되었지만, 이순신은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가치를 구현한 인물이다. 그의 이런 위대함을 증언하는 흔적이 지금껏 남아 있고, 사라진 자취를 찾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경북 선산의 설화는 영웅을 넘어 신격화된 이순신을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여름 어느날, 한 처녀가 목욕하는 이순신을 보고 상사병에 걸렸다. 처녀는 “장군이 내 곁에 와서 이야기나 하고 나면 병이 나을까, 그러지 않으면 낫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한다. 사정을 전해들은 이순신은 처녀를 만나고 사랑까지 나눈다. 그런데 처녀는 사람이 아니라 뱀이었다. 이순신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몸을 끝까지 허락했다. 원한을 푼 뱀은 이순신이 목욕했던 물에서 용으로 승천하고, 조화를 부려 전투의 승리를 도운다.

이 설화는 전근대기의 민중들이 이순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준다. 몸까지 내어주며 뱀의 원한을 풀어준 이순신은 낮은 곳에 귀를 기울여 억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합리적인 지도자’였다. 고려대 민족문화원 강상순 교수는 “(이런 류의 귀신 이야기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관리에게 호소해 합리적으로 원한을 해소하는 식으로 전개된다”며 “당시 사람들은 위인들이 신령한 기운을 가졌다고 믿었고, 사당을 만들어 신격화했다”고 말했다.

탄금대에서 패배한 신립 장군의 설화와 비교하면 이순신의 설화는 더욱 흥미롭다. 두 사람의 설화는 비슷한 형식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신립은 귀신의 위협에서 구해준 처녀가 구애를 하자 끝내 거절하고, 처녀는 결국 자살한다. 설화는 처녀의 귀신에게 홀린 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쳤다가 패전하고, 목숨까지 잃는다고 결말을 맺는다. 

장검 두 자루는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무기로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칼날에 새겨진 글귀에서 굳은 의지와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현충사관리소 제공
◆장검, 의지와 자부심을 표현하다

광화문의 장군상, 소설 ‘칼의 노래’ 등에서 장검은 무장 이순신의 상징이다. 때로는 국가 수호의 굳은 의지를, 어떨 때는 인간적인 고뇌의 드러내는 매개체였다. 이순신의 장검 두 자루가 지금까지 전해져 보물 326호로 지정돼 있다.

장검은 1594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든 것이다. 제작시기, 제작자를 전하는 글자가 장검의 슴베(칼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에 새겨져 있다. 이순신은 왜군 격퇴의 강한 의지와 세상을 덮을 만한 자부심을 표현한 글귀를 장검에 새겼다. ‘三尺誓天山河動色(삼척서천산하동색)’은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떤다”란 뜻이고, ‘一揮掃蕩血染山河(일휘소탕혈염산하)’는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강산이 피로 물든다”란 의미다.

장검은 길이 4m, 무게 4㎏가 넘는다. 너무 크고 무거운 데다 칼날에 ‘격검흔’(擊劍痕·검이 부딪친 흔적)이 없어 실제 전투에 활용되었다기보다는 장수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의장용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장검이 일본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경인미술관 이석재 관장은 조선환도의 전통과 외래적인 요소가 결합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거북선을 찾아라

1597년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전멸당하다시피 했다. 이 전투가 이순신 하면 연상되는 거북선의 자취를 찾는 작업의 단초가 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거북선도 이때 침몰해 바닷속에 잠들어 있지 않겠냐는 추측 아래 칠천량해전이 있었던 지금의 거제도 해역을 중심으로 수중탐사 작업이 여러 차례 진행됐다.

탐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3년 시작되었고, 해군까지 나섰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08년에는 경상남도가 첨단장비를 동원해 칠천량 전투가 있었던 해역을 탐사했지만, 결과는 역시 실패. 2012년에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바다를 뒤졌다. 기기탐사와 함께 잠수부들의 육안탐사까지 진행했지만 결과가 다르지 않았다. 수십년간 노력했지만, 거북선 찾기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포는 건져올린 적이 있다. 2012년 11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과 돌포탄을 발굴했다. 총통은 길이 58㎝, 지름 3㎝로 1588년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것이다. 발굴된 지점이 명량해전이 있었던 울돌목 인근이어서 이순신이 사용했던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큰 관심을 끌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문환석 과장은 “명량해전에서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임진왜란 때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며 “승자총통은 현재 보존처리 중이고, 내년이면 전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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