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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詩는 살인자를 구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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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08 21:30:46 수정 : 2014-08-08 21: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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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사건 줄줄이 발생 미쳐가는 사회
메마른 감성 적셔줄 인문학이 해법
더 이상의 끔찍함은 없다. 윤 일병 구타추행 사망사건, 울산 묻지마 살인사건, 김해 10대소녀들 집단구타성매매살인사건. 이것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가. 나는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내 뺨을 세 대쯤 갈기고 싶어진다. 스크린 속 공포나 스릴러에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우리에게 또다시 해일 같은 경악이 밀어닥친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 행성에 잘못 착륙한 것 같다.

무엇보다 윤 일병 사건은 온 국민들을 분노와 경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대부분의 국민,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군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가 ‘군기’라는 미명하에 합법화될 때 그것이 갖는 불합리함은 극단화된다. 국가제도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될 때 폭력의 범주는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 훨씬 광범위하고 무자비해질 수 있다.

10대 소녀들이 친구를 성매매시키고 고문하고 죽이고 시멘트를 부어 암매장한 사건은 또 무엇인가. 몇 달 전 공익요원이 강남대로변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사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을 이유없이 수차례 칼로 찔러 죽인 울산 묻지마 살해사건은 또 무엇인가. 이제 여자들은 아침에도 대낮에도 집에서도 공공대로변에서도 살해당할 수 있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대사, 부들부들 떨면서 “그래, 우리는 다 미쳐가고 있는 거야! 미쳐가고 있다구!!!” 폐쇄된 공간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죽이고 죽는 그 살육의 현장에 우리가 놓인 것만 같다.

누군가는 ‘치안’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인권’과 ‘정신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치안’ ‘인권’의 문제에 대해 후진적이다.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다. 국가는 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범죄자들의 인성을 교화해 왔다.

김용희 평택대교수·소설가
여기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어느 주에서 사회의 부랑자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리의 노숙인, 매춘부,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등. 그들에게 법의 엄격함을 가르치고 윤리를 가르치며 삶을 올바르게 잘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설명했다. 하지만 부랑자들에게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 부랑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삶에 대하여 희망과 꿈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의 감성이 움직이고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부랑자들을 변화시킨 것은 기부금도 아니고 복지제도도 아닌 ‘클레멘트 코스’라는 인문학 강좌였다.

흥,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지만 대학에서 인문학부는 퇴출 일순위다. 나도 국문학과 교수지만 우리 학교에서 구조조정이 논의될 때마다 국어국문학과가 빠진 적이 없다.

수치로 환원되고 결과주의로 평가되는 한국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취업률이다. 화폐로만 환원되는 성과주의, 결과주의가 만들어낸 소산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삶이 행복한가. 감성이 메마르고 공감능력이 부재하는 이 현실 속에서. 나는 감히 시를 읽자고 권한다. 그래, 시를 읽자. 그리고 시를 쓰자. 헉헉대며 성과주의에 매달려온 자신을 잠시 내려놓자. 시야말로 자기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고백의 흔적이다. 숨가쁜 호흡을 천천히 내려놓고 세상을 천천히 살펴보는 일. 시를 읽고 쓰는 일은 결국 혼자 달려간 자기와 그 속도를 채 따라가지도 못한 자기의 그림자를 하나로 꿰매는 일이다. 사이코패스 유영철이 감옥에서 시를 쓴다고 한다. 시사랑 모임 회원들이 교도소를 방문해 수감자들에게 시를 읽어준다고 한다. 유영철이 시를 쓴다고 그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범법자들이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를 쓸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자신과 삶에 대하여 겸허해진다. 자신의 진정성과 만난다.

김용희 평택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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