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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생존주의'…프레퍼족과 서바이벌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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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3 06:00:00 수정 : 2014-08-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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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닥칠지 모를 최악 상황… ‘생존의 기술’이 나를 지킨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하면 빈 페트병에 줄을 묶고 물을 10% 정도만 채워서 던져주세요.” 8월 초 충남 공주의 한 캠프장에서 김종도(40)씨가 ‘생존캠프’에 참가한 대전지역 초등학생 20명에게 물에 빠졌을 때 생존하는 방법을 설명하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세월호 참사를 뉴스로 접한 학생들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쳐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교육에 임했다. 한 여학생이 “물을 채우지 않아야 더 가벼울 거 같은데 물은 왜 채우나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빈 병일 경우 물에 뜨는 ‘부력’이 더 큰 건 사실이지만 물을 전혀 채우지 않으면 바람에 날려 원하는 곳으로 던질 수가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이 페트병을 끌어안을 때는 몸을 뒤집은 상태에서 반드시 가슴 안쪽으로 당겨 안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트병이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생존의 달인’으로 소개된바 있는 김씨는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커다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생존법 강의를 해 달라는 섭외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장성 요양원 화재,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지하철 충돌 사고, 싱크홀,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안전이나 생존 문제에 무심했던 사람들이 재난 대비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정부의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을 믿고 있다가 무방비로 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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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재난에 스스로 대비하는 것을 가리켜 ‘생존주의(Survivalism)’라고 부르는데, 크게 맨몸으로 자연에 부딪히며 살아남는 ‘생존전문가’(서바이벌리스트·Survivalist)’와 생존법을 익히고 물질적으로 준비하는 ‘프레퍼족(Prepper)’으로 나뉜다.

◆도구를 이용하는 ‘프레퍼족’

프레퍼족은 대개 핵 전쟁이 나도 수십년을 혼자만 살 수 있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벙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기(杞)나라 사람이나 종말론에 빠져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프레퍼족의 모임인 포털 사이트 카페 ‘생존21’에 모인 사람들은 종말론에 심취한 ‘별종’들이 아니라 대부분 평범해 보였다.

카페 게시판에는 ‘비상시에 먹을 물이 없으면 수돗물이나 아무 물을 떠서 1ℓ에 락스 네 방울을 떨어뜨리거나 햇빛에 여섯 시간 정도 노출하면 먹을 수 있는 물이 된다’거나 ‘미니 방독면과 포도당 캔디 등 최소한의 필요한 생존물품으로 ‘생존 팩’(EDC)을 만들고 항상 휴대하라’ 등 다양한 생존법이 설명돼 있다.

카페 회원들은 폭설에서 고립된 경험이나 정전으로 가족들이 공포에 떨었던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발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자신들이 경험한 사고가 아니라도 세월호 침몰과 같이 국가적으로 큰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다. 휴대용 방독면과 같은 재난 대비 용품들이 개발되면 직접 사용해보고 성능을 검증한 뒤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한다.

◆자연에 맞서는 ‘서바이벌리스트’

미국 디스커버리채널의 다큐멘터리 ‘인간과 자연의 대결’ 주인공 베어 그릴스(Bear Grylls)는 고립된 오지에서 애벌레와 곤충을 찾아 먹고, 악어 등 위험천만한 동물들과 싸움을 벌인다. 영국 육군공수특전단(SAS) 출신인 베어 그릴스는 서바이벌리스트다. 국내에서는 유명 개그맨과 연예인들이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하는 프로그램이 등장, 주목을 끌고 있다.

생존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김종도씨는 국내의 대표적인 서버이벌리스트다. 199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2005년까지 코브라 헬기를 몰았다. 전투 헬기를 조종해 적진 깊은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추락하거나 불시착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살아 돌아올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생존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씨는 “아무리 재난대응시스템이 잘 정비돼 있더라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일정시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어 그릴스 등 일부 서바이벌리스트는 위험한 시도를 많이 하고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부분이 있어 섣불리 따라하면 위험을 자초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존의 달인’으로 알려진 김종도씨가 충남 공주에서 열린 ‘생존캠프’에서 대전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불을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비무환’ 좋지만 잘못된 정보 확산 우려도


프레퍼족과 서바이벌리스트의 공통점은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경우를 가정하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프레퍼족과 서바이벌리스트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서바이벌리스트가 될 수는 없다. 바쁜 현대인이 오지를 체험하고 생존법을 익히기는 쉽지 않다. 반면 프레퍼족은 작은 준비로 재앙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프레퍼족은 “커지는 전쟁의 위협, 불안정한 식량 공급, 전염병 확산의 위험 등으로부터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활동을 더 이상 ‘기인지우(杞人之憂)가 아니라 유비무환(有備無患)으로 봐 달라”고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가로부터 실망한 개인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나선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정보들이 여과 없이 확산될 경우 불안감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구보건대 최영상 교수(소방안전관리과)는 “결국 우리 사회가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해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위험에 직접 맞닥뜨리는 개인들이 안전에 대해 자각하는 현상의 일부”라며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공유되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전문가들과 언론이 검증하는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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