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리는 지금 ‘평화의 시대’에 살고있다?

입력 : 2014-08-30 00:45:24 수정 : 2014-08-30 00:45: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대∼현대사회 폭력의 역사 탐구, 인간 진화할수록 전쟁·약탈 감소
자기통제·도덕성·이성 등 폭력성과 싸워온 ‘선한 천사’ 때문
더 나은 세상 추구 ‘희망’ 안겨줘
스티븐 핑커 지음/김명남 옮김/사이언스 북스/6만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김명남 옮김/사이언스 북스/6만원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르는 현상을 다룬다.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책의 부제는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가’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지난달 8일 시작된 가자지구 사태로 2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상당수가 민간인이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며칠 전 이라크 반군이 미국인 기자를 참수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동서고금에 반복된 인간의 폭력성, 잔학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언론이 전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한국 사회에 폭력은 차고 넘친다.

정말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폭력의 형태를 전하는 각종 사료와 문학 작품, 고고학·민족지학·인류학 등의 연구성과를 분석한 저자는 “이런 생각 자체가 회의와 불신, 분노마저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폭력의 세계적 추세는 거의 모든 차원에서 하강하는 곡선을 그렸다”고 단언한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폭력 감소의 근거로 제시한다. 기원전 8000년부터 1970년대까지 과거의 폭력이 지금과 비교해 훨씬 광범위하고, 잔혹했음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기원전 1200년쯤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전쟁이 현대의 어떤 전쟁 못지않게 총력전”이었음을 보여준다. 아가멤논은 “저들 중 아무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어미의 뱃속에 든 아이조차도. …죽은 자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을 사람 하나 남지 않게 하라”고 명령한다. 오늘날 ‘도덕적 가치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구약성서는 “기나긴 폭력의 찬미”나 다름없다. 부도덕한 인간을 징치하겠다고 결심한 신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고 일으킨 대홍수는 ‘집단 살해’다. 구약의 기록은 물론 허구이며, 상징이다. 하지만 “기원전 500년쯤 근동 문명의 삶과 가치를 보여주는 자료임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집단살해를 자행했든 아니든 그것을 좋은 생각으로 여긴 것만은 확실하다.” 콜로세움에서는 로마 시민들에게 여흥을 제공하기 위해 약 50만명의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19세기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인 결투가 횡행했고, 20세기에만 해도 여성과 아이,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5세기 독일의 일상을 묘사한 책에 실린 그림은 지금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폭력의 다양한 형태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저자는 폭력과 잔학이 일상 깊숙이 뿌리박힌 ‘피투성이의 세계’인 과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긴긴 시간 발전한 비폭력의 경향을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한다. 수렵사회가 농업사회로 바뀌면서 만성적 폭력을 줄이는 ‘평화화의 과정’을 거쳤고, 500여년에 걸친 문명화는 살인율을 10분의 1∼5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이성에 주목한 ‘인도주의 혁명’은 전제 정치, 노예제, 고문 등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던 폭력을 철폐했다. 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의 4가지 인간 본성은 폭력에서 멀어지는 이런 과정을 가능하게 한 ‘선한 천사’다.

실상이 이렇다면 현재를 가장 폭력적인 시간으로 규정하는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인간의 인지 방식이 ‘착각’의 원인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얼마나 쉽게 떠올리냐 하는 점은 인식을 규정한다. 폭력적 죽음과 잔혹행위는 기억에 더 깊이 새겨지고, 발달한 미디어는 연일 폭력 사건을 전하기 때문에 현대인은 폭력성을 증명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연상한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실제와는 괴리가 있는 인식이다. 감수성의 변화는 다른 요인이다. 인간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발달시켜 왔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할 때 심각하지 않은 폭력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높아진 기준으로 지금의 인류는 폭력을 타락의 증거로 쉽게 받아들인다.

과거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자는 식의 서툴고, 황당한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다. 폭력성과의 싸움을 이끌어온 선한 천사, 외생적 요인들이 존재함을 깨닫고, 더 나은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희망적인 보고를 담은 책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