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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규범·체제에 대한 저항… “터전을 불태우라”

입력 : 2014-09-02 20:54:28 수정 : 2014-09-03 10: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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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돌 맞은 광주비엔날레 5일 오픈
2014광주비엔날레가 3일 프레스오픈을 시작으로 5일부터 11월9일까지 66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 중외공원 일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중요 비엔날레 가운데 하나로 꼽히면서 한국의 대표적 국제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39개국 11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다소 도발적인 전시주제의 키워드는 ‘불’이다. 불이 지닌 변화의 힘에 주목,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출발이라는 예술적 화두를 담았다. 불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불은 파괴하지만, 또한 그 파괴를 통해 새로운 탄생의 터를 닦아준다. 불은 한 가지 형태에 고정되지 않고 늘 형태를 바꾸며,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사로잡고 넘어서며 퍼져나간다.

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 내걸린 제레미 델러의 대형 문어 작품. 3차원 기법으로 거대한 문어의 공격으로 전시관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전시주제 ‘터전을 붙태우라’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전시관 입구의 대형 그림이 눈길을 끈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에서 선보였던 제러미 델러의 작품이다. 광주의 풍경이 삽입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거대한 문어가 그려진 가로 29.2m, 세로 15.8m 규모다. 사실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3차원의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 내는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마치 거대한 문어의 공격으로 전시관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관 5개 전시실의 벽지도 이색적이다. 흡사 화재가 일어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콘셉트의 벽지는 영국 작가 엘 우티모 그리토의 작품 ‘미장센’으로 6606㎡(2000평) 규모의 대형작이다. 작가는 불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 이미지를 밀도 있게 구현했다.

3전시실에 들어서면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의 가상의 집이 관람객을 맞는다. 석고보드 등을 활용해서 만든 집이다.

집 내부에는 팝 아티스트 조지 콘도, 스튜어트 우 등 7명 작가의 실제 작품이 걸려져 있다. 429㎡(130평) 규모의 우르스 피셔의 뉴욕 아파트를 실제 규모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극사실주의 벽지를 사용하면서 집의 내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의 가상의 집. 작가의 뉴욕 아파트를 실제 규모로 만든 작품이다. 구축된 터전(집)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1990년대 붐을 이룬 중국의 네오리얼리스트의 대표작가인 류샤오둥은 한 달간 광주에 머물며 그린 젊은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통해 막 발발하는 현대의 삶을 기록하는 화가다. 인구이 이동이나 환경의 위기, 경제적 상황과 같은 국제적 이슈에 늘상 주목했다. 매우 직조된 구성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진과 미디어가 장악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구상회화를 고수하고 있는 작가다.

한국 작가들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도 볼거리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인 윤석남 작가는 ‘무용가 최승희’라는 타이틀로 설치작품을 보여준다. 이불 작가는 퍼포먼스 기록영상을 통해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편견과 억압을 고발한다.

이 밖에도 현대인의 무기력, 불안 등을 극사실 인체조각으로 표현하는 최수앙, 리움 미술관 ‘아트 스펙트럼 2014’ 전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완을 비롯해 구정아, 김성환, 이슬기, 홍영인, 정금형, 임민욱 등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제시카 모건은 2002년부터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동서양 조화, 다양성, 융화 등의 메시지를 세계미술계에 던졌던 인물이다. 전시에서 남미 등 제3세계 작가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전시관람 포인트는 불과 집이다. 터전(집)을 불태우는 행위는 박제화된 관습과 규범, 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새로운 집의 구축을 위한 능동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불이 지닌 환희와 유희적 요소도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우리는 광주정신의 승화를 그 어느 지점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울지역 관람객들은 열차를 타고 광주비엔날레를 당일코스로 즐길 수 있다. 코레일(www.letskorail.com)에서 용산∼광주행 왕복 열차권과 광주비엔날레 입장권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062)608-4224, 4225, 4228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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