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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원주민들의 삶터… 곳곳 천진난만한 그림

관련이슈 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입력 : 2014-09-11 21:23:02 수정 : 2014-12-22 17: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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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30〉 타이노족의 자취 담긴 동굴벽화
아침에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려고 했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숙소 직원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줬다. 동네 전체에 단수라고 했다. 동네에는 물이 안 나와도 외국인이 머무는 저 호화 리조트에는 물이 나올 것이다.

양동이 하나면 충분히 씻고 나갈 수가 있으니, 나는 괜찮다. 끝까지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보카치카를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동네를 지나가는 과과(미니버스)는 많다. 라로마나(La Romana)로 가는 길에 후안돌리오(Juandolio)와 동굴을 가볼 예정이다.

후안돌리오는 작은 해변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근처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의외로 파에야를 파는 집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시켜 먹었는데, 아쉽게도 너무 짜서 먹기 힘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이곳에 맡겨 놓고 바닷가로 갔다. 리조트를 통해서 들어갔는데, 구경만 하고 간다고 말하고 들어갔다. 후안돌리오는 지나치는 마을 정도로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에 간다는 버스를 탔지만, 그 버스는 다른 동네로 가는 버스였고, 그곳에서 다른 버스로 옮겨줬다. 요금은 더 받지 않아서 아무 말 안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한참이나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고속도로만 있고 허허벌판인 곳에서 차를 멈추더니, 나만 내리라고 했다. 이곳이 동굴이라고 말해줬고, 나는 의심스러워서 몇 번이고 되물었다. 고속도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곳이라고 일러줬다.

망설이지 않고 고속도로를 바로 건너갔다. 차가 이렇게 빨리 달리는데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하루종일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빨리 건너가야만 한다. 넓은 들판에 서 있는 인상적인 간판이 동굴유적지임을 알려줬다. 내가 가려고 하는 동굴은 ‘마라비야스 동굴’(Cueva de las maravillas)로, 원주민이 살았던 곳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이스파뇰라섬을 아이티와 나눠 쓰고 있다. 이스파뇰라섬은 콜럼버스가 오기 전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중남미의 원주민들은 ‘타이노(Taino)’족이 주를 이룬다. 타이노족은 체격이 작고 동굴에서 생활했지만, 상당히 발달된 유적들을 남기기도 했다. 

타이노족이 살았던 동굴의 입구 표지판이 인상적이다.
이스파뇰라섬에서 타이노족은 멸종되고 말았지만, 그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참혹하게 멸종당한 종족의 자취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새삼 깨닫는다. 유럽에서 넘어온 질병에 대부분 멸종됐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유럽인 밑에서 갖은 노역을 이기기에는 타이노족의 체구가 너무 왜소했다. 슬픈 역사가 이 동굴에 담겨 있는데, 지금은 이곳의 동굴벽화로 관광상품을 만들어 팔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동굴 입구까지 가는 길은 차를 타지 않고 걷기에는 멀다. 한참을 들어가서야 입장료를 받는 사무소를 찾을 수 있었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지만, 가이드가 안내를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이드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나누어 팀으로 움직인다. 동굴에 통제되는 구역도 있기 때문에 모든 관람객은 가이드와 함께 움직인다.

영어팀이 만들어지기에는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 스페인어팀에 들어갔다. 가이드는 말이 너무 빠른 여자여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여행 온 현지인이 쉽게 통역해줘서 중요한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천년동굴이라고 불리는 동굴들은 아직까지 물이 떨어져 종유석을 만들고 있는 사실 자체로도 놀랍다. 물이 고여 호수가 된 곳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전 던지기를 한다. 종유석이나 동굴 벽은 만지지 못하게 가이드가 통제하면서 사람들을 인솔했다. 동굴 곳곳에는 타이노족들의 낙서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낙서를 해놓은 것만 같았다. 동굴벽화 하면 우리나라의 고구려 벽화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일까, 이런 벽화들은 낙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패턴을 보면 아이들이 한 낙서처럼 보인다. 사람을 그리는 방식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다. 타이노족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그들은 장난기가 많고 웃음이 많은 사람일 것 같다. 작은 일에도 호기심을 가지며, 몸집은 작아도 날렵해서 수렵활동을 잘하는 종족이었을 것 같다.

동굴에서 한껏 감상에 젖어서 타이노족을 떠올리다 보니 동굴 끝이었다. 동굴은 한 부족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컸고, 통제되는 구역까지 합하면 거대한 크기였다. 그 동굴에서 나와 출구까지는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길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정원처럼, 때로는 미로처럼 잘 가꿔놨다. 그리고 이구아나를 모아 놓은 동산이 있었다. 이구아나는 화석같이 생겼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서로들 싸우고 있었다.

동굴 근처 정원은 신기한 나무들로 가득했다.
출발하며 짐을 맡겨 놓고 간 사무소에 ‘린다’라는 친절한 직원이 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며 다음엔 라로마나로 갈 것이라 했더니, 좋은 곳을 소개해 줬다. 라로마나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는 ‘바야이베(Bayahibe)’라는 마을이었다.

친절하게 종이에 버스 정류장 이름과 장소를 적어 줬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써줬다. 그녀는 라로마나에 살고 있으므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또 다시 쌩쌩 달리는 차를 제치고 고속도로를 건너갔다. 과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햇빛과 불안함으로 채워진다. 그러던 중 저 멀리 서 있던 경찰차 한 대가 다가왔다. 위험하다고 고속도로에 서 있지 말라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다 이런 도로에서 히치하이킹도 하고 과과도 타는데, 왜 갑자기 위험하다는 말을 할까.

내가 듣기로는 이 나라 경찰도 비리가 많다. 자꾸 의심이 가는데, 두 명의 경찰이 라로마나까지 데려다 줄 테니 타라고 한다. 괜찮다고 거절을 했는데도 위험해서 안 되고, 과과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이곳에 정차를 안 해 준다며 타라고 했다. 그들의 행동은 친절을 넘어섰고,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다. 계속 의심은 갔지만, 경찰이니까 나빠봤자 차비 정도 받겠지 생각하며 차에 탔다.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라로마나로 들어가니, 아는 사람이 많은 그 경찰은 여기저기 인사를 하고 다닌다. 바야이베를 간다고 하니까, 라로마나에서 바야이베 가는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린다가 적어준 종이를 보니, 그곳이 맞았다. 경찰은 저 버스를 타고 가라며 내려줬다. 차비도 받지 않고, 정말 순수한 호의를 베푼 경찰이었다. 그들은 구아구아까지 안내를 해주고 떠났다. 도미니카공화국이 치안이 안 좋다는 말 때문에 내가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나보다. 친절한 사람들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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