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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기후변화 대응, B플랜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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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5 21:17:29 수정 : 2014-09-25 21: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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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정상회의서 내년 배출권 거래 시행 자랑한 박 대통령
새 기여안 내놓기 앞서 ‘매의 눈’으로 현실 보길
기후변화 협상의 배는 산으로 간다. 왜 그런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탓이다. 선진국, 신흥개도국, 최빈국 그룹 관점이 정면 충돌하고 그룹 내부 득실도 엇갈린다.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되는 난제라는 측면도 있다. 먼저 자백하면 홀로 박살나기 쉬운 살얼음판인 것이다.

기후 협상의 성과들, 즉 교토의정서와 그 후속탄들의 요체는 간명하다.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가 견딜 수 있게 협력하자는 것이다. 고통 분담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어떻게 비용을 분담하느냐는 실행 차원에 들어가면 난장판이 되고 만다. 서로 ‘네가 먼저’라며 저 깊은 우물 속으로 남을 떠밀기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이 난장판에서 외교적 개가를 올리는 국가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를 주도했고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09년 한국을 모범사례로 꼽은 기억도 새롭다.

‘녹색 무대’는 한국을 위해 차려진 밥상인 것일까. 이젠 박근혜 대통령이 사자후를 토한다. 엊그제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2015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전국 단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GCF 기여금을 최대 1억달러까지 확대해 나갈 것이란 공약도 했다.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한국이 부러운 정상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펄펄 날면 되는 것일까. 박 대통령은 “새로운 기후체제 하에서의 기여 방안을 내년 중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정상들 앞에서 다짐했다. 그렇게 해도 좋을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국회는 2012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했다. 그 시행령 25조 1항은 ‘202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한다’고 적시한다. 감축 목표를 법제화한 것이다. 남이 밀기도 전에 우물로 들어간 꼴이다. 그 내용도 이성적이지 않다.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도 법으로 정하지” 하면서 혀를 차는 전문가가 괜히 많은 게 아니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정부는 유럽연합(EU)권에서도 탈 많은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부터 정식 시행키로 했고 엊그제 자랑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미국 중국 일본도 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하느냐”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우는 소리’ 한다고 핀잔만 받을 뿐이다. 일각에선 ‘국제 약속’이라며 삿대질이다. 대체 어떤 잘난 나라가 이런 약속을 철두철미 지키기에 삿대질인지 모를 일이다. 이제 한 술 더 떠 ‘새 기여방안을 제출’한다는 공언까지 나오니 걱정이 태산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가. 정부는 나중에 ‘아니면 말고’ 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들로선 사활이 달린 사안이다. 국가경쟁력도 결딴날 수 있다. 

이승현 논설위원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선 나라들이 줄줄이 퇴각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은 2010년 칸쿤에서 “교토의정서 이름으로 국가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교토의정서를 내팽개친 것이다. 캐나다, 뉴질랜드, 러시아 등도 마찬가지였다. 호주는 2년 전 도입한 탄소세를 7월에 폐지했다. 왜들 이런가. 먼저 자백한 후유증이 너무 커서였다. 우리라고 다를 것인가.

협상 분수령이 될 내년 파리 당사국총회 전망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한테 자랑할 새 카드가 아니다. 외려 탈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미·중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우리 뒤를 안 따라오면 어찌할 것인가. 황당한 시행령을 안 만들면 어찌할 것인가. B플랜이 필요하다.

국내에는 기후 협상 기류를 꿰뚫어보는 전문가가 즐비하다. 천만다행이다. 얼마 전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란 책을 낸 노종환 일신회계법인 부회장은 제대로 대응하려면 ‘뜨거운 가슴과 매서운 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멀리 내다보는 ‘매의 눈’이다. 박 대통령에겐 매의 눈을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 계속 국제사회를 굽어보며 사자후를 토하길 원한다면 매의 눈으로 간추려놓은 B플랜을 챙겨놓은 뒤에 비로소 토할 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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