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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군대 이끌고 세계 제패의 선봉에 선 ‘몽골의 한니발’ 수부타이

입력 : 2014-09-26 19:13:53 수정 : 2014-09-26 19: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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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박리라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박리라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1206년 몽골족의 단일 지도자로 추대된 칭기즈칸은 제국군을 편성하며 1000명으로 구성된 연대급의 ‘천호’ 95개를 편성하고 지휘관을 임명했다. 지휘관 중 4명에게 그는 깊은 신뢰를 표시했다. “그대들은 강한 자의 목덜미, 장사의 허리를 부러뜨렸네…전투의 그날이 오면 그대들은 그렇게 내 앞에 서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네.” 수부타이는 이 중의 한 명이었다. 칭기즈칸이 영토정복을 의식해 군대를 개편했을 때, 2명의 ‘오를로크’(육군 원수)를 처음으로 지명했다. 수부타이는 제베와 함께 몽골군의 첫 오를로크가 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호령했던 칭기즈칸의 군대는 800년 넘게 지난 지금도 많은 이야기의 원천이다. 수부타이는 그 이야기 중 하나의 주인공이다. 책은 “수부타이 바투르, 즉 용장 수부타이는 군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었다. 전술적 탁월함에 있어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에 버금가며 책략가로서는 알렉산더, 카이사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소개한다. 이슬람 연대기에는 “32개 민족을 정복했고 65차례의 대격전에서 승리했다”고 적혀 있다.

삼림부족 출신인 그는 말도 타지 못하는 어린 소년 시절 칭기즈칸과 만났다. 뭐든 다하겠다는 투지는 강했으나 몽골 전사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절친한 동료인 친형 젤메가 있었다. 젤메를 비롯한 최고 지휘관들이 벌이는 토론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수부타이가 위대한 장수로 커가는 자양분이 됐다. 실전 경험이 더해지면서 수부타이는 탁월한 기만전술과 기습 작전을 벌이는 전략가로 성장했다.

칭기즈칸 군대의 활동은 수부타이의 전략 설계를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다. 금나라, 이슬람 제국, 러시아 및 서방과의 전쟁에서 작전 수립은 그의 몫이었다.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칸의 시절에도 군사 기획과 감독 권한을 거머쥐고 있었다. 칭기즈칸 부자는 왕자들을 명목상 지휘관에 임명했지만 “수부타이의 재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콧대 높은 왕자들을 달래려고 그의 가치를 저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책은 수부타이의 일대기는 물론 전술 및 지략, 근대 전쟁기술과의 관련성까지 다룬다. 저자는 수부타이에게서 비롯된 몽골의 전술이 중앙아시아, 소련, 독일로 흘러들어갔다고 분석한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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