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대한민국’ 대륙을 호령하던 옛 기상 계승염원 담겨

입력 : 2014-10-01 20:35:31 수정 : 2014-10-01 20:35:3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사 속 나라 이름’ 학술회의
이름은 곧 정체성이다. 작명(作名) 주체의 지향점이 담기기 마련이며, 당대의 현실이 반영된다. 5000년 우리 역사에서 명멸했던 왕조의 국호와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학연구센터, 한민족학회가 역대 국호의 기원을 탐색하고 유래를 밝히는 개천절 기념 학술회의 ‘한국사 속의 겨레이름과 나라이름’을 1일 개최했다. 대륙을 호령했던 고대의 힘찬 기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지금까지의 나라 이름에 깃들어 있다는 견해가 강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장군총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국호에는 민족의 자주적 정체성을 담으려는 의지가 반영되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구려주의자 지지 얻기 위한 국호 ‘고려’


경기대 이재범 교수는 논문 ‘후삼국과 고려의 국호의 유래와 의미’에서 고려란 국호의 제정에 후삼국 시대 지역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901년에) 궁예가 국호를 고려라고 한 것은 당시 점령지역에 고구려 회귀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궁예는 그러한 지역정서를 잘 알고 고려라는 국호를 채택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정서를 한반도 중부 지역의 유력 가문인 죽산박씨의 동향에서 읽어냈다. 죽산박씨는 박적오를 선조로 하는 데, ‘적오’는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를 의미한다는 것. 죽산박씨의 우두머리를 고구려어인 ‘대모달’로 지칭했다는 것도 근거로 들었다. 궁예가 국호를 고려로 하자 죽산박씨 등 고구려계 호족들이 호응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904년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하고,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는 ‘무태개혁’을 실시한다. 이는 ‘탈고구려’의 시도였고, “고구려주의자들에게는 굉장한 배신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왕건은 고구려 계승의 새로운 주인공이었다. 이 교수는 “왕건은 궁예가 고려를 국호로 표방하였을 때 평화적으로 귀부한 세력이었다. 그러던 그가 반역 세력으로 돌변하게 된 까닭은 궁예의 탈고구려에 대한 반발”이라고 규정했다. 개국과 동시에 고려를 국호로 정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구려주의자들인) 왕건과 추종자들의 의도된 계획에 의해 고려가 건국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광복 후 구성된 제헌 의회의 모습. 제헌의회는 대한, 조선 등을 두고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다 진통 끝에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옛땅 수복의지 표현한 ‘대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는 조선, 대한민국의 유래와 변천에 대해 살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신채호는 단군 이래 가장 오래 사용된 국호인 조선이 ‘주신→ 숙신→ 조선’의 변화과정을 거쳤다고 분석했다. 주신은 ‘관경(管境·영역)’을 가리키는 만주어로 “민족이 살고 있는 온 누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신채호의 주장에 입각하면 중국을 중심에 두고 “조선은 본래 대륙의 동방에 있는 땅을 가리키는 이름”(최남선)이라고 한 현재의 유력한 가설도 설자리가 좁아진다. 이 교수는 “신채호의 해석은 …단군 시대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정할 때 한자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숙신, 주신과 같은 의미로 단지 관경을 뜻할 뿐이었다고 설명한다”고 소개했다.

조선에 이어 1897년 국호로 채택된 대한(大韓)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 통용되던 ‘삼한(三韓)’에서 비롯된 것이고 ‘민국(民國)’은 18세기 영·정조대 이후 중시된 백성 위주의 국가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삼한이 한반도 중부 이남에 자리 잡은 마한, 변한, 진한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우리 민족의 강역은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제한된다. 이 교수는 “한(韓)을 한반도에 가두려는 것은 식민사관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며 “고려시대 이래 삼한은 삼국을 지칭하기도 했다. 삼국을 계승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고구려의 옛 땅을 모두 되찾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호 대한은 일제강점기 말살 정책의 대상이었고, 조선이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 잡게 된다. 광복 이후에도 조선이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1948년 5월에 결성된 제헌 국회에서 국호 채택 문제를 논의할 때는 대한과 조선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조선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 헌법 초고가 제출되기도 했고, 일부 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은 국호로 대한민국을 밀어붙이며 토론을 봉쇄했고, 결국 다수결로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결정됐다. 이승만은 애초 국호 논의가 재개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으나 1950년 1월 “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해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등은 대한해협으로 고쳐 부른다”는 고시를 제정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