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부모와 부모는 자유와 법치를 찾아 홍콩에 왔습니다. 이번 시위는 다음 세대를 위한 법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56세의 퇴직 남성)
중국 건국 65주년 국경절인 1일 국기 게양식이 거행된 홍콩 완차이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 모인 앳된 얼굴을 한 10대 남학생과 평생을 홍콩에서 살아온 중년 남성의 염원은 한 가지였다.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 질서가 온존하는 홍콩이다. 불복종 시민 저항 운동으로 불리는 이번 ‘우산혁명’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날 홍콩의 하늘은 전날 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언제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로 푸르른 하늘이 열렸다. ‘푸르른 미래’를 향한 홍콩인들의 시위는 이날이 절정에 달했다.
사진 = 유튜브 동영상 캡쳐 |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이 국기게양식 행사장에 참석하자 일부 시위대는 국기게양대에서 등을 돌린 채 노란 리본을 묶은 손을 들어 엑스(X)자 표시를 내보이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렁 장관을 향해 홍콩에서 쓰는 광둥화(廣東話)가 아닌 중국 표준말인 푸퉁화(普通話)로 “퇴진 689”를 외치기도 했다. 689는 간접선거로 진행된 2012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1200명의 선거위원 중 렁 장관에게 지지표를 던진 선거위원 수를 의미한다. 현재 방식대로라면 2017년 선거에서 친중 인사에게 던져질 표 숫자도 689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렁 장관이 국경절 기념사에서 시위대를 겨냥해 “홍콩과 중국 대륙의 발전은 밀접히 연결돼 있다”면서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중국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中環) 지하철 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애드머럴티(金鐘)역 부근 팀메이 도로에는 ‘민주주의의 나무’가 세워져 눈길을 끌었다. 이번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우산과 진압을 막기 위한 장애물들로 세운 이 상징물은 전 세계인을 향한 홍콩 민주주의의 절규로 다가왔다.
신동주 특파원 |
중국 본토에서도 긴장이 고조됐다. 공안당국은 이날 시위 보도를 통제하면서 시위 지지 인사 체포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인권 사이트인 유권망(維權網)에 따르면 황민펑(黃敏棚), 류후이(劉輝) 등 일부 광저우 시민은 시내 공원에서 홍콩 시위 지지 집회에 참석한 후 경찰에 연행됐다. 쑹닝성(宋寧生), 궁싱화, 뤄야링(羅亞玲) 등의 민주인사들도 공안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변덕이 심한 홍콩 하늘에서 뿌려지는 빗줄기는 한낱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했다.
홍콩=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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