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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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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1 23:41:11 수정 : 2014-10-02 0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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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리가 있으면 패배도 있다. 승리는 영광이지만 패배는 불명예다. 연승(連勝)은 감격스럽고 연패(連敗)는 고통스럽다. 한국 여성들이 세계 스포츠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1984년 LA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으로부터 시작된 여성 스포츠의 찬란한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 전체 메달 수의 32%를 여자 선수들이 따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여자 선수들의 우승 퍼레이드는 계속되고 있다.

만년 꼴찌 여성 선수들이 있다. 여자 럭비 대표팀이다. 남자 럭비 대표팀은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금메달을 4개씩이나 따냈다. 여자 럭비팀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고 1승이다. 여자 럭비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 대회에서 전패를 당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연패 중이다. 싱가포르에 0-19, 일본에 0-50, 중국에 0-64로 졌다. 어제 치른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7-10으로 아깝게 패했다. 아직 1승의 희망은 남아 있다. 오늘 라오스와 탈꼴찌 자리를 놓고 결전을 벌인다.

아시안게임 1승도 기적이라는 여자 럭비팀, 그러나 여자 럭비팀 자체가 기적이다. 고등학교와 실업에 단 한 개의 팀도 없다. 대학팀으로는 지난 3월 창단한 수원여자대학교 여자 럭비팀이 유일하다. 동호인 클럽도 2개만 있을 뿐이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지만 매경기가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다. 선수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여자 럭비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현실이다. 아시안게임 출전 두 번째이지만 여자 럭비선수들은 여전히 무명이다. 여자 축구가 세계 무대를 호령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여자 럭비 역사는 이제 4년밖에 안 됐다.

럭비공이 튀는 방향은 아무도 풀지 못하는 불가사의 중의 하나다. 럭비공은 그냥 ‘럭비공’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쓰일 때가 훨씬 많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의 뜻도 종잡을 수 없다. 선수들이 럭비공을 들고 달리는 한 여자 럭비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10년 넘게 베란다 벽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럭비공이 있다. 집에 들어가는 대로 깨끗이 닦아둬야겠다. 여자 럭비팀의 ‘그생순’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으로.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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