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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

입력 : 2014-10-16 22:03:07 수정 : 2014-10-18 18: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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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투명인간’ “작년 아버지 생일에 우리가 뭐 했더라?”(아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었나? 집에서 그냥 밥 먹었던가?”(어머니)

“투명인간 놀이하자. 내년 아버지 생일엔 확실히 기억하게 될 거야. … 절대 눈 마주치면 안 돼. 몸이 부딪쳐도 모른 척해야 해. 이름 불러도 대답하지마.”(아들)

아버지의 생일날. 어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이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들이 장난삼아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척하자고 제안한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은 재빨리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실내등을 끈다. 집 안에 들어선 아버지는 어둠 속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발견한다. 다가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처음에는 장난이겠거니 여기지만 너무 완강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진짜로 내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투명인간’(손홍규 작, 강량원 연출·각색·사진)은 한 사회 내에서 존재성을 박탈당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난처럼 시작된 투명인간 놀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결국 가족들은 외면했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제 삶 역시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섬뜩한 진실에 압도되어 더 이상 놀이에서 빠져 나갈 수 없게 된다.

장난으로 시작한 놀이였는데, 그 장난이 점점 주인이 되어가면서 멈출 수도 없게 되는 아이로니컬한 풍경이 연출된다. 무관심과 소외가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지우고 사라지게 만드는지 투명인간이 된 아버지보다는 그를 투명하게 만든 가족들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봉합할 수 없는 가족의 붕괴 직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눈앞의 타인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이 사회를 투명인간들의 사회로 만드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해준다.

극은 주제를 통일성 있게 진행하며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형식을 달리하며 의미를 바꾸어 나간다. 도입부는 코믹하게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묘사한다. 그러다 가족의 증오가 드러나면서 섬뜩해지고, 투명인간으로 취급받는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면서 실존적, 내면적 내용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가족들이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해진다.

중요한 키워드는 가장(假裝)이다. 가장이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전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시대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소외와 고독,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증폭시켜 보여준다. 관계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없이 투명한 우리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극단 동은 배우의 움직임과 신체언어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1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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