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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의 독재자'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송가

입력 : 2014-10-21 16:29:42 수정 : 2014-10-24 20: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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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다소 포함**

‘나의 독재자’는 쉽게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을 ‘김일성’이라 믿고 살아가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들이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두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 각각 아버지 성근과 아들 태식으로 분했다. 실제 몇 살 차이가 나지도 않는 배우들이 부자지간을 연기했다고 해서 공개 전부터 떠들썩하게 화제와 기대를 모았다.

‘나의 독재자’는 원작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이해준 감독의 순수 창작물이란 점이 더욱 마음을 움직인다. 감독은 남북정상회담 리허설 당시 김일성의 대역이 있었다는 한 기사를 접하고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연기자(배우)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사내의 삶은 끝내 눈물방울이 되어 관객의 무릎 위로 떨어진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연기 기술이 있다. 바로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1863-1938)가 저서 ‘배우수업’에서 언급한 ‘진실 되며 살아있는 연기’에서 출발한 ‘메소드 연기’(리 스트라스버그가 정립)라는 개념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정부의 ‘김일성 대역 만들기 프로젝트’에 투입된 허교수(이병준 분)란 인물은 성근에게 수없이 이 ‘메소드’를 외친다.

그래서였을까. 북한의 사상과 체제, 메소드 연기론을 끝없이 주입한 끝에 성근은 점점 자신이 김일성이라 믿게 되고, 망상증은 점점 그의 인생을 옭아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별 일도 다 있네’라며 넘어갈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러한 배우의 인생에 ‘아버지와 아들’, 그 미묘한 관계를 집어넣어 감동을 유발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 전반부는 성근이 김일성 대역배우로 발탁돼 혹독한 훈련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후반부는 성인이 된 태식과 늙어버린 성근이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반부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성근이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미처 다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반응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해준 감독은 성근이 20여년 간이나 담고 있었던 마음속 응어리들을 후반부(현재)에 와서 서서히 하나 둘 끄집어내더니, 결국 한 장면에서 모든 걸 폭발시킨다.

그렇기에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감도 없지 않지만,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괜찮다. 그만큼 설경구가 혼자 토해내는 광기어린 독백신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 장면 하나에 배우와 아버지로서의 삶, 애환, 희열, 슬픔, 고통 등이 모두 담겨있다.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지는 미치광이의 연극, 20년 전 그가 미처 끝내지 못한 연극 리어왕의 독백신과 오버랩 되며 묵직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15세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10월30일 개봉.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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