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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누가 플린트를 스타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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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3 20:27:32 수정 : 2014-10-23 21: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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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건 연상시키는 ‘대통령 명예훼손’ 공방
청와대와 검찰은 무엇 위한 기소인지 더 늦기 전에 따져봐야
언론 자유를 보호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주요 판례인 1980년대 ‘폴웰 대 플린트’ 사건은 낯뜨겁게 불거졌다. 포르노 잡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복음전도사 제리 폴웰을 근친상간을 일삼는 인면수심 목사로 묘사한 광고 패러디를 ‘허슬러’ 83년 11월호에 실은 게 발단이었으니까. 폴웰은 평소 “구정물을 끌어들인다”며 포르노 산업을 비판했다. 패러디는 포르노 잡지다운 반격이었던 셈이다.

폴웰은 정치사회적 위상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 언론 비판도 많이 받았다. 폴웰은 대범했다. 하지만 플린트의 저급한 비방에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법적 대응이 분연히 전개됐다. 손해배상 청구원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명예훼손, 둘째는 사생활 침해, 셋째는 감정적 고통. 법정의 문이 열린 것은 84년이다.

그로부터 30년. ‘폴웰 대 플린트’ 사건 망령이 되살아난 것일까. 일종의 기시감을 주는 공방이 서울에서 불거졌다. 검찰은 얼마 전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 때문이다. 민사 아닌 형사 대응이다.

이번 화근은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하의 8월3일 기사다. 가토 전 지국장은 포르노 성향의 기술을 했다. 남녀 관계 의혹을 늘어놓은 것이다. 근거는 뭔가. 글을 아무리 뜯어봐도 취재 노력은 부족했거나 없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작심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독신 여성 대통령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색칠을 했을 리 만무하니까.

발단은 이해하기 쉽다. 역할 구분도 어렵지 않다. 박 대통령이 피해자, 산케이신문과 가토 전 지국장이 가해자 역할이다. 상식과 통념, 언론 윤리 등 그 어느 차원에서 봐도 헷갈릴 여지가 전혀 없다. 산케이신문의 혐한(嫌韓) 기조로 봐도 그렇다. 하지만 검찰 기소로 파문이 번지는 사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검찰에 묻고 싶다. 대체 무엇을 위한 기소인가. 이길 자신은 있는가.

‘폴웰 대 플린트’ 사건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4년 쟁송을 거쳐 88년 플린트 손을 들어줬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과 인권단체가 그 과정에서 대거 플린트 편을 든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폴웰이 이긴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팽배했던 까닭이다.

폴웰은 무엇을 얻었을까. 공인은 비판받게 마련이고, 그 비판에 대한 사법 차원의 응징은 결코 쉽지 않다는 판례를 얻었다. 아울러 플린트를 법정 스타로 만들었을 따름이다. 96년 할리우드 영화 ‘래리 플린트’(원제 The People vs. Larry Flint)가 나왔을 정도였다. 폴웰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참담한 귀결도 찾기 힘들다.

이승현 논설위원
폴웰 변호인 노먼 로이 그루트먼의 변론엔 되새길 대목이 많다. 그는 “힘을 악용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데서 변태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무자비하고 무분별하고 악의에 가득 찬 언론인에 대한 사건”이라며 “언론 자유는 소중하지만 무제한의 권리는 아니다”고 했다. 이 언술의 정당성은 결코 퇴색할 리 없다.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미 사법부는 언론 자유를 더 중시했다. 세계 추세도 마찬가지다. 국내 판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인은 이런 대결에서 손해를 보게 돼 있다. 공인 중의 공인인 국가원수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사안은 어찌 귀결될까. 낙관이 쉽지 않다. 검찰이 이겨도 실익은 기대난이고 국가 이미지 손상은 피할 수 없다. 져도 고민이고. 산케이신문은 이미 언론 자유의 불침번이라도 되는 양 큰소리를 치고 , 해외 유수 언론은 까칠하게 서울을 주목하는 중이다. 어이없고 답답하다. 고발 주체가 시민단체이니 청와대에 적극 대처를 요구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좌시할 일은 아니다. 비판의 광장에 맨몸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공인 운명을 깊이 인식하며 매듭을 풀어야 한다. 가급적 서두를 필요도 있다. 산케이신문이나 가토 전 지국장을 스타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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