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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굴 위 사람들의 삶과 문화 … 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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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30 20:40:55 수정 : 2014-12-30 15: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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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 개통 제주도 동북부에 자리한 김녕, 월정 마을 일대에 지난주 새로운 도보 길이 열렸다. 제주가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지질공원(Geopark)으로 인증된 이후 지질트레일로는 세 번째로 놓인 걷기 코스다.

제주에는 2010년 수월봉 지질트레일이 개통됐고, 올 4월에는 산방산·용머리 지질트레일이 열렸다. 모두 화산지형을 활용한 트레일 코스이지만, 앞선 두 개의 도보코스와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수월봉과 산방산·용머리는 화산폭발로 생겨난 독특한 경관이 순식간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반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빼어난 풍광을 내세우는 트레일이 아니다. 이 길은 용암이 굳으며 형성된 거친 지질을 이겨내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풀어놓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도보길을 조성한 제주관광공사 측이 ‘민속·문화 지질트레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의 들머리인 성세기해변.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성세기해변에 자리한 김녕어울림센터가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전체 거리는 14.6㎞ 남짓.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전체 코스를 걷는 데 4시간30분쯤이 걸린다.

처음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은 세기알 해변. 세기알은 ‘성세기해변 아래’라는 뜻이다. 해안에는 원뿔 형태로 쌓아올린 검은 현무암 더미가 서 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등대 역할을 했던 김녕도대불이다. 

등대로 사용했던 김녕 도대불. 생선기름을 이용해 불을 밝혔다.
해안에는 ‘빌레’가 넓게 형성돼 있다. 용암이 흘러내린 후 식으며 평평한 바위가 된 곳을 제주말로 빌레라고 한다. 이 바닷가 빌레는 만조 때면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는 드러나는 ‘조간대’가 됐다. 빌레 밑에는 투수층이 형성돼 있어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난다. 대표적인 게 청수마을의 청굴물이다. 주민들은 물이 솟는 자리에 허파 형태의 돌담을 쌓고 찜질을 즐겼다. 지금도 청굴물에서는 수정 같은 물이 꽐꽐 솟는다.

김녕, 월정 지질트레일에는 거친 화산지형에서 힘들게 살아 온 제주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청수마을 바닷가에는 용암이 만든 동굴을 따라 흘러든 민물이 솟아나는 ‘청굴물’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청굴물에서 찜질을 즐겼다.
김녕, 월정 마을 일대 땅밑은 온통 동굴이다. 수많은 동굴 위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이 폭발하며 묽은 용암은 먼저 흘러나와 바다에 닿으며 굳어져서 빌레가 됐다. 그 아래로 채 식지 않은 진득한 용암이 빠져나왔고, 그 빠져나간 자리가 동굴로 남았다. 천연기념물 제384호인 당처물 동굴, 제4667호인 용천동굴도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바다로 흘러든 용암은 식으며 빌레가 됐고, 이는 조간대를 형성했다.
제주의 동굴 중 가장 아름답다는 이 두 동굴은 공개가 되지 않지만, 트레일에 포함된 ‘게웃샘굴’에서 용암동굴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게웃샘굴 위로는 두께 2m 정도의 화산석이 쌓여 있는데, 그 위에 밭과 집이 들어서 있다. 동굴 속으로는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했던 맑은 물이 흘러간다. 청굴물의 용천수도 이런 동굴을 통과해 바닷가에 도달한 것이다.

여러 차례 용암이 흘러내리며 온통 화산석으로 뒤덮인 이 일대는 제주 땅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으로 꼽혔다. 이 마을 사람들은 빌레를 부수어 밭을 만들었다. 화산석 위에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그걸 일일이 깨서 들어낸 후 다시 흙을 담아 밭을 만든 것이다. 이 밭을 ‘빌레왓’이라고 한다. 깬 돌은 버리지 않고 왓(밭) 주변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게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부르는 제주의 검은색 화산암 돌담이다. 

이 지질트레일에서 만나는 김녕밭담길과 월정밭담길은 제주 돌담의 진수를 보여준다. 제주 안에서도 밭담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김녕, 월정마을이다. 제주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이 밭담은 들녘을 휘휘 돌아가며 제법 서정적인 풍광을 펼쳐놓는다.

척박한 땅에서 팍팍한 삶을 살다 보니 신(神)에 기대야 할 때가 많았을까. 지질트레일 코스에는 김녕본향당, 궤네기당, 선세기당, 해신당 등 아직도 수많은 당집이 남아 있다. 이들 대부분도 용암지형을 활용해 제당을 들였다.

트레일의 반환점은 월정리 해변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주의 여행지다. 이곳에 도회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쁜 카페와 펜션이 몰려 있다. 여기서부터 ‘바당빌레길’이 펼쳐진다. 바당은 바다를 일컫는다. 용암이 빚은 언덕인 ‘투물러스’, 1270년 삼별초를 막기 위해 조간대에 쌓은 현무암 장벽 ‘환해장성’ 등 볼거리가 해안을 따라 줄지어 있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에서 만나는 해안 풍경은 제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화산지형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풀어내고 읽는 것은 여간 흥미롭지 않다.

제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 064)=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782-9801)는 김녕초등학교 근처에 있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1132번 해안도로를 따라 김녕해수욕장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제주공항에서 구 제주행 95, 100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700번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동성동에서 하차하면 된다. 트레일 중간에 게스트하우스 형태인 ‘지오 하우스’ 1, 2호점이 마련돼 있다. 김녕어울림센터도 소규모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월정리 해변 카페거리의 ‘모래비 펜션’(784-4228)에서는 시원한 바다 전망이 펼쳐진다. 김녕에서는 ‘좀녀네집’(782-8884)의 전복죽이 유명하다. 성세기 해변의 ‘다래향’(782-7706)은 속풀이짬뽕에 홍합과 쏙 등을 푸짐하게 넣어준다. 제주관광공사 융복합사업단 740-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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