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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 졸업식 날 아이들 축하퍼레이드 마을축제로

관련이슈 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입력 : 2014-11-13 21:58:22 수정 : 2014-12-22 17: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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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37〉 산속 마을 작은 학교 축제를 가다
도미니카공화국 지도를 보면 중간쯤에 ‘하라바코아(Jarabacoa)’라는 마을이 있다. 대부분이 산악지대를 표시하는 녹색으로 칠해진 지역이다. 사람들은 하라바코아를 산간마을이라고 했고, 그곳에 가면 말을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차가 못 다닐 정도의 산골짜기 마을이라서 말을 타고 다닐 것으로 생각했다. 한껏 기대하고 차에 올랐다. 산토도밍고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가던 차는 언제부턴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리조트와 래프팅 업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내가 상상하던 곳과는 다르다는 걸 아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재밌는 건 올라가는 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집이다. 작은 상점인데, 나무로 대충 허술하게 만들어 놓은 가판대 같은 곳이다. 음식 재료와 완성된 요리까지 대부분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는데, 마치 길게 늘어선 시장 같았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하라바코아 마을의 중심가에 닿는다. 산 정상에 올라온 것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이 준비한 행렬은 소박하지만 재밌다.
하라바코아는 캐리비안 제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피코 두아르테(Pico Duarte)’에 붙어 있는 마을 중 하나다. 하라바코아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가 보다. 그 이유는 직접 와서 알게 됐다. 계곡이 흐르고, 그 물이 강처럼 불어난 곳에 리조트가 있으며 등반을 할 수 있었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때 말을 타고 갈 수 있단다. 하라바코아는 차도 다니는 마을이며, 동네에서 말을 태워주기도 했다. 그건 관광용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것으로, 별 재미가 없어 보였다. 내가 상상했던 산간 마을과는 달랐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작은 골목들로 이뤄진 이 마을에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져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그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줄지어 오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와서 구경했다. 그 축제의 내용을 듣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라바코아에 작은 직업학교가 있는데, 오늘이 졸업식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들이거나 친인척이다. 그리고 이렇게 귀여운 꼬마들이 나와 퍼레이드를 하는데 안 나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행렬을 구경했다.
그 행렬을 따라 끝까지 가보았다. 학교로 들어가는 행렬을 따라 나도 학교에 들어갔다. 지역신문에서 나와 취재할 정도로 이 축제는 마을에서 중요한 행사였다. 학교에 들어가니, 행렬은 어디로 갔는지 뿔뿔이 흩어지고 잔디밭에서 주민 장터가 열렸다. 보물이라도 찾은 듯 그곳으로 향했다.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를 운 좋게 맞닥뜨리다니 기분이 좋았다. 지역 특산품, 직접 만든 목각인형, 먹거리, 그리고 시가와 커피 등을 팔고 있었다.

시가는 그동안 많이 봐 왔는데, 하라바코아산은 이곳에서만 판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도시를 갔을 때도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 레이나(왕비)로 뽑힌 학생들.
커피도 하라바코아산은 이곳에서만 판다. 커피와 시가는 무료로 준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는 하라바코아가 부자 마을은 아니지만 너무 가난한 사람이 없고, 빈부 격차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빈부 격차가 심한 도시에서는 패스트푸드점만 가도 밖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은 생활수준이 대부분 비슷하고, 먹을 것을 구걸하고 다닐 만큼 가난한 이들이 없다.

채소와 과일은 아주 값이 쌌다. 믿어지지 않는 가격에 레몬 한 봉지를 샀다. 또 지나가는 길에 수박을 갈아서 음료수로 파는 곳이 있어 사 먹었는데, 전혀 수박 맛이 나질 않았다. 즉석에서 요리하는 집도 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음식이다. 장작불을 피워 굽고 있는 요리는 거친 가루를 누룽지처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처음 보는 요리라서 신기했다.

솜사탕과 꽃을 파는 가게도 있고, 나무에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녔고, 나도 기분좋게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확실히 산간마을이라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햇볕은 따갑기만 했다. 그때 빗줄기가 쏟아졌으나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더위를 식히러 학교를 나섰다. 학교 바로 앞에 맥주집이 있고, 그곳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이미 흥을 돋우고 있었다.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과 친해졌다. 여기저기서 “살루드(Salud)”을 외치면서 잔을 높이 들었다. ‘살루드’는 건배라는 의미로 하는 말인데, 간단한 인사를 할 때도 쓴다. 건강하라는 의미가 있어 건배와 인사말에서 쓴다.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의 미소가 넉넉해 보인다.
또 하나 재밌는 표현으로 누군가 재채기를 했을 때 꼭 ‘살루드’를 말해준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꼭 말해준다. 이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나도 재채기를 하는 사람에게 말해주니, 그 사람은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일이다.

생화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는 여자에게 어디서 샀느냐고 물으니, 원하면 가져다 주겠단다.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서 화관을 만들어오라고 시켰고, 그 학생은 30분이 지나서야 만들어왔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더위를 식히고 있는 동안, 비는 어느새 그쳤다.

졸업식은 온종일 하고도 모자라 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졸업장만 주고 끝내는 행사가 아니라, 무대를 만들어 축하공연을 하고 모두 함께 춤도 추며 즐기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뜻밖에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된 하라바코아가 좋아졌다. 하라바코아가 좋아진 이유는 단순히 졸업식 때문은 아니었다. 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산속 시골 마을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고, 그리고 이곳의 푸른 공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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