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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 섞여도 '애국심은 하나'

입력 : 2014-11-13 21:29:26 수정 : 2014-11-17 17: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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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아시아 중간 위치 혼혈인 많아
자국 문화·역사에 대한 자긍심 높아
백인 여성과 아랍계 여성이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영어로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헤어질 무렵 서로 국적을 물었더니 둘 다 터키 사람이었다.

터키인의 생김새는 각양각색이다. 이민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금발에 파란 눈, 직모에 홑꺼풀 눈, 까만 곱슬머리에 갈색 눈 모두가 터키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터키인들이다. 

지중해를 지나는 배편 후미에 터키 국기인 월성기가 펄럭이고 있다.
전형적인 터키인이라고 여겨지는 외모가 있긴 한데 그것마저 별로 구분은 안 간다. 빌켄트대에서 만난 친구 중에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세바스티아노라는 친구가 있다. 그가 바로 ‘너무 터키인’처럼 생겼다. 세바스티아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터키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튀르크 데일림(터키인이 아닙니다)’이라고 국적을 밝힌다.

지리적으로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인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다. 아나톨리아는 서쪽과 동쪽에서 온 다양한 민족이 오랫동안 각축을 벌이던 땅이다. 터키인들의 선조로 여겨지는 ‘괵 튀르크(돌궐)’ 또한 동북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이었다.

게다가 괵 튀르크가 아나톨리아 반도에 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이 땅에는 화려한 문명이 꽃을 피웠고 아나톨리아인,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아랍인, 쿠르드족 등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뒤섞이게 된 것도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오스만튀르크가 아프리카와 아랍, 유라시아 일부까지 지배하면서 또 다른 혼혈을 이뤄냈다.

그렇다고 터키를 미국처럼 다양한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한데 섞여 사는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외모적 특색이 다른 인종이 함께 살게 되었지만 터키는 하나의 강력한 국가적 정체성으로 묶여 있다.

아이베르크라는 터키 친구는 그렇게 서구적인 외모를 하고서도 자기 이름은 진정한 터키의 선조인 괵 튀르크에서 따온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다시 말하면 괵 튀르크는 돌궐, 즉 동북아시아의 벌판을 누비던 동양적인 외모를 지닌 민족이었다.

터키인들의 자긍심은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는 터키 국기, 아이 이을드즈(Ay yıldız, 월성기)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이 이을드즈는 학교나 관공서마다 걸려 있으며 웬만한 식당, 일반 상점이나 가정집, 심지어는 자동차나 배에도 게양돼 있다.

특히 태극기를 만나기 힘든 환경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터키의 국기 사랑은 이채롭다. 아이 이을드즈뿐만이 아니다. 터키에서는 한 남자의 초상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건물 바깥에 커다랗게, 가게 벽 한편에 조그맣게 걸려 있는 것도 모자라 지폐에 찍혀 있는 위인의 초상도 표정만 다르지 같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20세기 초 극심한 혼란의 시기에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왕조를 무너뜨린 뒤 터키공화국을 세운 영웅이다. 초대 대통령이 된 그는 강력한 정교분리, 근대교육 정착, 여성권리 신장, 언어 개혁 등에 힘쓰며 터키를 이슬람 국가 중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덕분에 아타튀르크는 오늘날까지 국부로 존경받으며 터키인들의 애국심과 국가적 정체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남다른 애국심으로 뭉쳐 있다 해서 터키가 마냥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튀르크와 소수민족, 서부와 동부 간의 다툼으로 터키는 시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곳으로 수렴되는 마음의 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뿌리에 대한 자긍심은 자국 문화·역사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 이어진다. 터키인들의 나라 사랑은 외국인인 내 마음속에서도 터키에 대한 애정을 싹 틔운다.

앙카라=글·사진 김슬기라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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