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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본질이란 결국 잊혀지는 것
지상에 없는 존재, 붙들고 있을 수 없어
살아 있는 생명은 잘 살아 있어야
사람은 언젠가는 늘 간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가는 곳이 어디라고 믿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 그곳에 다녀온 이는 없다. 임사체험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이 또한 다시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매년 혹은 매일 매시 어디선가는 사람들이 죽고 태어나는 울음소리가 들리지만 특별한 죽음이 눈앞을 가리지 않는 한 일상으로 수용할 따름이다. 저무는 갑오년은 유난히 죽음이 부각된 해였다. 거론하기조차 고통스러운 세월호의 어린 죽음들에다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을 지켜보던 이들의 갑작스러운 추락, 멀쩡해보였던 남자 가수와 친근한 여배우까지 하루아침에 부고를 전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들은 잘 살아 있어야 한다. 잘 살아 있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 위무할까. 한문학자 안대회가 엮어낸 ‘새벽 한시’에 눈에 띄는 한시들이 보인다.

“세상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려/ 천지에 이 한 몸은 고독하다// 세상만이 나를 잊었겠나?/ 형제마저 나를 잊었다//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었으니/ 내일이면 내가 나를 잊을 차례다/ 그 뒤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까운 이도 먼 이도 완전히 없어지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고려시대 문호 백운거사 이규보(1168∼1241)가 이십대에 썼다는 ‘잊혀지는 것’이라는 시편이다. 과연 문장가는 다르다. 어찌 그 젊은 시절에 죽음의 의미를 적확하게 저리 간파했는지 놀랍다. 죽음의 본질이란 결국 잊혀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어도 잊혀졌다는 것은,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은 죽음이거나 죽임인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잊어버린다면 그 상태야말로 살아 있는 죽음일 터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정작 세상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면, 더운 숨이 붙어 있는 한 그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뜨거운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이를 잊지 않는 것은 그들을 살려두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상에 없는 존재를 언제까지나 붙들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인생은/ 한 번 피는 꽃/ 천지는 큰 나무다.// 잠깐 피었다/ 도로 떨어지나니/ 억울할 것도 겁날 것도 없다.”

영정조시대의 학자 원중거(1719∼1790)가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친구를 조문하고 지었다는 ‘친구의 죽음’이다. 엮은이는 “어느 한철 피었다가 지는 것이 인생인데 모진 바람에 빨리 지는 것도 있고 조금 더 오래 피는 꽃도 있거니와 어쨌든 인생은 꽃”이라고 주석을 달았는데 그럴듯하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비록 비바람에 시달린다 해도 ‘꽃’인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 떨어질 운명이고 다시 절기가 지나면 다른 꽃이 피어날 것이니 억울할 것도 겁날 것도 없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꽃들은 그 순간을 찬란하게 지키면 될 일인데 꽃으로 천지에 매달려 있기 위해 치러야 하는 슬픔이 기실 만만치 않다.

“아침에 해남으로 누이를 보냈는데/ 하루 종일 몹시도 날이 차구나.// 형제와는 처음 헤어져/ 고향집은 갈수록 멀어만 가는데/ 스산한 바람은 거세게 불고/ 밤들어 슬픔은 아련히 밀려오겠지.// 지금쯤 어느 주막 들어/ 집 생각에 눈물을 쏟고 있을까?”

석북 신광수(1712∼1775)가 누이를 시집보내고 쓴 ‘누이를 보내고’라는 시편이다. 이 한시의 번역자는 “시인의 넋은 길 떠난 누이 뒤를 따라가 어느 주막집 호롱불 밑에서 함께 울고 있는가 싶다”고 썼다. 잊지 못하는 것도 형벌이다. 가수나 배우는 노래와 영상으로 살아있을 테지만, 살아서 내내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을 묻고 살아야 하는 부모의 아픔은 어찌 다독일까. 새봄에 다시 피어날 꽃들이라도 돌아온 아이처럼 반기기 바라는 건 지나친 억지일까. 새삼스레 돌아보니 이리 정한 깊은 한시를 지은 이들도 모두 떨어진 꽃이다. 홍길주(1786∼1841)라는 옛 꽃이 가을밤 바닷가에서 적었다는 “잠 못 이루는 역마을의 밤/ 가을 등잔, 불꽃이 절로 까분다”는 구절이 가슴속에서 까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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