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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해풍에 꼬들꼬들 말라…당신의 '밥도둑' 되리라

입력 : 2014-12-04 22:08:10 수정 : 2014-12-04 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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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의 고장’ 영광 법성포의 넉넉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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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에서는 아무래도 굴비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영광 하면 굴비, 굴비 하면 영광을 떠올릴 정도로 영광은 우리 땅의 최대 굴비 산지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영광 법성포 굴비라고 해야 한다. 영광 굴비의 대부분이 법성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법성포는 영광군 법성면의 자그마한 반도에 붙어 있는 포구. 법성포 바로 앞 칠산 바다에서는 예로부터 지나가는 배 위로 뛰어오르는 조기만으로 만선을 이뤘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조기가 많이 잡혔다. 굴비 맛도 법성포 것을 으뜸으로 친다. 조기 건조에 알맞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고, ‘섭간’이라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겨울부터 제철을 맞는 법성포 굴비.
흔히 굴비는 3월 산란을 앞둔 알배기 조기를 천일염으로 간을 해 말린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기는 12월부터 제철을 맞는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해야 어획량도 많아지고 맛도 좋아진다. 법성포 상인들은 “바닷물이 차가워져야 조기 살도 탄탄하고 쫀득해진다”고 말한다. 조기 말리기도 날씨가 차가워지고 건조해지는 이즈음부터 본격화된다. 내년 설 명절 때 밥상에 오르는 굴비는 12월부터 말린 것으로 보면 된다.

요즈음 예전 같은 ‘마른 굴비’는 많지 않다. 대신 물만 살짝 뺀 ‘물굴비’가 굴비 행세를 하고 있다. 냉동저장법이 발달되고 도시 사람들이 통통하고 부드러운 생선살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른 굴비의 진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법성포에는 두름으로 엮어 해풍에 굴비를 말리는 풍경이 남아 있다. 법성포에 즐비한 500여개의 굴비 가게마다 곶감처럼 굴비를 매달기 시작하는 게 바로 이즈음부터다.

대덕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법성포구.
법성포에서 굴비만 찾을 일은 아니다. 법성포 일대에는 영광을 대표하는 명소들이 수두룩하다. 가장 먼저 손꼽아야 할 것은 대덕산(303m)이다. 외지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광 최고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법성포구 동쪽에 야트막하게 솟은 대덕산 정상은 보기 드물게 내륙이 아닌 바닷가에서 물돌이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와탄천 물길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은 원래 갯벌이었으나,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두 차례 간척이 이뤄지며 소드랑섬 주변에 한시랑뜰이라고 불리는 논이 조성됐다. 이 과정에서 물길이 S자를 그리며 돌아나가는 물돌이 지형이 만들어졌다. 

영광 대덕산 정상에 오르면 굴비 산지인 법성포구 일대와 한시랑뜰의 물돌이 지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륙의 강변이 아닌 바닷가에 물돌이 지형이 형성된 곳은 아주 드물다.
등산로 입구에서 대덕산 정상까지는 800m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가파른 지형이어서 30분쯤 걸린다. 대덕산 정상에 자리한 대덕정에 오르면 법성포구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일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법성포는 밀물 때가 되면 포구 바로 앞까지 물이 돌아서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의 집이 빗살처럼 촘촘하여 사람들이 작은 서호(西湖)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법성포에는 굴비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대덕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지금도 ‘집이 빗살처럼 촘촘하다’는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법성포는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신라와는 달리 백제는 불교 전래 경위가 불확실했는데, 1998년 학술고증을 통해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영광 법성포에 발을 디디며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는 인도 간다라 양식의 탑과 유물관 등이 세워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지닌 명소로 자리 잡았다. 

대덕산 아래 와탄천과 갯벌.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부근에는 국가명승 제22호로 지정된 ‘숲쟁이’가 있다. 인의산 자락에 100∼400년생 느티나무 120여그루와 팽나무, 개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방풍림이다. ‘숲언덕’을 뜻하는 숲쟁이에서는 서해안 유일의 단오제가 열렸고, 지금도 커다란 그네 두 개가 설치돼 있다. 이즈음 숲쟁이의 나무들은 잎을 다 떨궈 숲의 정취는 맛볼 수 없으나, 나무데크 산책로를 따라 언덕에 오르면 정겨운 포구 풍경이 펼쳐진다. 숲쟁이의 나목(裸木)에서 방풍은 기대할 수 없겠으나, 해풍에 익어가는 굴비가 있어 법성포의 겨울은 넉넉하고 따스할 것이다.

영광=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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