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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털 뽑히는 오천만 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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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12 21:05:54 수정 : 2015-01-12 23: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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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앞장선 ‘털 뽑기’… 뒤따라 털 뽑는 기관들
가장의 호주머니 비니 고통은 커지고 경제 살릴 길은 까마득
2013년 8월의 일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설화를 입었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처럼 세금을 거둬야 한다.” 재무관료에게는 경서(經書) 구절과 같은 이 말이 화근이었다. 봉급쟁이들은 화를 냈다. “뽑을 털이 아직 남아 있는가.” 나라 곳간을 걱정한 그는 억울했을 테다. 이런 말을 했다. “연간 16만원이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

그는 양반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온 나라가 거위털 뽑기에 나섰다.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은행, 기업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털은 모두 뽑아댄다. ‘살짝 뽑는’ 원칙은? 온데간데없다.

강호원 논설실장
불을 댕긴 것은 정부다. 담뱃세를 올렸다. 한 갑에 2000원씩 세금을 더 매긴다. 하루 한 갑 피우면 한 해 73만원을 더 물어야 한다. 담배 피우는 아들이라도 둔 흡연 가장은 날벼락을 맞았다. 뒤따르는 말이 더 크게 들린다. 안종범 경제수석, “담뱃값을 물가상승률에 맞춰 자동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담뱃값 인상 다음은 술”이라고 했다. 담뱃세와 주세를 올려 국민건강을 챙기겠다고 한다. 요순(堯舜)이 환생했으니 박수를 쳐야 하나. 그렇게 거둔 돈은 딴 데 쓴다.

행정자치부는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에 두 팔 걷어붙였다. 한 사람당 평균 4600원인 주민세는 내년까지 1만∼2만원, 영업용 자동차세는 3년 동안 배 올리기로 했다. 실행되면 자가용과 비교한 영업용 세금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나올 테니 자가용 세금도 올리지 않을까. 국민건강을 말할 수 없으니 ‘그냥 올리겠다’고 한다.

세금폭탄이다. 세금을 이렇게 쉽게 걷은 적도 드물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다. 정부가 정신없이 털을 뽑으니 모두가 그 길을 따른다. 공공요금 인상. 봇물이 터졌다. 인천과 대구시는 지하철·버스 요금을 200∼300원 올리려고 한다. 서울은 공공요금을 아예 2년마다 한 차례씩 인상하겠다고 했다. 이미 올린 곳도 많다. 200원이 오르면 4인 가족은 얼마나 더 써야 하나. 하루 왕복 400원, 네 명이면 1600원, 한 달 25일 타면 연간 48만원이 더 든다. 상·하수도 요금, 쓰레기봉투값…, 오르지 않는 것이 없다. 고속도로 요금도 4.9% 인상하겠다고 한다. 너무 올려 미안한 걸까, 수년간 30% 가까이 올린 전기요금, “아직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은행은 예대금리차를 벌리고, 기업은 물건 값을 올린다. 약속이라도 한 걸까, 10% 가까이 값을 올린 공산품이 수두룩하다. 석유제품만 가격 횡포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정상인가. 국제 원자재가격은 5년8개월래 최저 수준이다. 21개 주요 원자재값은 작년 하반기에만 21% 떨어졌다. 원유가격은 반 토막 났다. 공공요금을 왜 올려야 하며, 공산품값은 왜 올려야 하는가.

‘D의 공포’가 밀려드니 “이때”라며 올리는 것인가. 그렇게 해 물가통계에서 ‘저성장·디플레 실정(失政)’을 감추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앞장서 거위털을 뭉텅이로 뽑고 있으니 ‘약탈적 가격’이 방치되는 것 아닌가.

‘한심한 정책’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누구의 털을 뽑고 있는가. 중산층과 서민이다. 일자리는 없고, 임금은 늘어나지 않는다. 털을 뽑아대니 고통은 커진다. 약탈적 가격이 전염병처럼 번지면 경제흐름은 어떻게 될까.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가 다시 늘고, 경기도 선순환곡선을 그리는 것이 정상이다. 지금은 어떤가. 세금으로, 가격 조작으로 중산층·서민의 호주머니를 비게 하니 쓸 돈이 남을 턱이 없다. 소비가 늘기를 바라는가. 내수가 살아날 길은 좁아지고, 불황은 장기화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한다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 세금과 약탈 가격으로 호주머니를 털어 경제를 돌게 할 수는 없다. 빈부격차는 또 어떻게 될까.

이런 물음을 던진다. 왜 정부는 예산지출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가. 왜 공공기관은 고비용·저효율 고질을 수술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모두가 거위의 털이나 뽑아 배를 채우고자 하니 거위는 삭풍을 견디기 힘들다. 무엇으로 뜻을 모아 내일을 도모할까. 불만과 갈등이 폭발하지 않으면 다행일 터다. 털 뽑히는 5000만 거위들, 참 순하다.

강호원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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