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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예술화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입력 : 2015-01-13 20:32:48 수정 : 2015-01-13 20: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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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초대 받은 ‘빛의 작가’ 한호 캔버스 위에 그림이 바로 그려지지 않고 한지가 먼저 한 겹 발라진다. 작가는 그 위에 먹과 목탄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것으로도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려진 캔버스에 무수한 구멍들이 뚫리고 그 안쪽엔 LED조명등이 설치된다. 빛을 쫓고 있는 한호(45) 작가의 작업방식이다. 그가 올해 세계 최대 미술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이이남 작가와 함께 초대됐다. 본전시, 국가관 전시와 별개로 베니스 시내 ‘팔라초 벰보’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연계 전시다. 파주출판단지 작업실에서 특별전 출품작을 한창 마무리하고 있는 한 작가를 만났다.

“어린 시절 강물이 흘러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에 빨려들었다. UFO 같은 ‘빛의 배’들이 둥실둥실 어디론가 떠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배를 타면 어드메 동화 속 나라에 틀림없이 다다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빛에 천착하게 된 배경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은은한 달빛에 끌리기 시작했다. 어스름 달빛에 매화꽃 향기를 노래한 선인들의 감성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느 달 밝은 밤 찾은 산사의 풍광은 그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매화나무 가지가 달빛을 타고 꽃창살에 스며들고, 명상에 잠긴 스님의 아우라와 겹쳐지는 순간 모든 것들이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깨침의 순간이 그런 것이 아닐까.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은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작품 화두를 ‘그런 찰나’의 체험에 두고 있다. 특별전 출품작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작업실 공간에 들어서자 벽엔 완성된 작품들이 걸려 있고 중앙엔 둥근 달(태양)이 걸려 있다. 천장과 바닥은 거울로 깔았다. 처음엔 그림들의 윤곽도 뚜렷한, 태양이 떠 있는 낮 풍경이다. 15초 정도가 흐르자 공간이 자동센서에 의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인공태양이 달로 바뀌는 순간이다. 일제히 그림 속 LED조명도 빛을 발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한 우주공간을 연상시킨다. 3차원의 공간에서 4차원의 우주공간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을 준다.

“달빛은 차가우면서도 온화한 모성의 빛이다.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정신을 감싸주는 빛이다. 그러기에 우리를 성찰하고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생명의 시작은 태양 같은 열정이지만 완성은 달빛 같은 냉정에 있다고 본다.

“모정(母情)은 열정이 아니고 냉정이다. 사실 진정한 모정은 차가운 것이다. 그러기에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사랑은 냉정하다.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리는 냉정이 바로 모성애다.”

그는 우주야말로 모성애를 상기시키는 공간이라 했다. 모든 것이 거기로 말미암아도 차갑기 그지 없다. 그러면서도 황홀한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서양에서는 정신이상의 상태를 ‘루너틱(lunatic)’이라고 부른다. ‘루나’가 라틴어로 달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달과 광기를 연관시켜 생각한 전통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광기는 카타르시스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인공 태양과 달빛,그림과 LED조명이 어우러져 환상적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작품 ‘영원한 빛’
사실 달은 어두운 음지의 이야기를 비출 때 쓰이기도 한다. 늑대 인간, 구미호, 드라큘라 같은 존재들도 보름달이 뜨면 세상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는 존재가 된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부정되는 ‘타자’를 비추는 상징이라는 얘기다.

“달빛의 환상은 너무 환한 햇빛의 사각지대에 숨겨진 삶의 진정한 모습을 엿보게 하는 마음의 빛이기도 하다.”

그는 빛의 조형화를 통해 인간 존재를 성찰해 보게 만든다.

“빛의 추적을 통해 한 인간의 존재에서 죽음까지를 그려내고 싶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그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존재의 의미을 다시 한번 예술이란 도구를 통해 사유해 보려고 한다.”

그는 빛이야말로 4차원의 공간, 영원성을 체험케 하는 매개체라고 했다.

“빛이 존재하고 그 빛 속에서 인간의 사유가 존재한다. 빛 속에 희망이 있고 영원성이 있다. 실로 빛은 우리가 해석할 수도, 해석될 수도 없는 것이다. 태초에 빛이 그렇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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