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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용서 못할 죄” 소름 돋는 ‘유토피아’

입력 : 2015-01-23 01:39:46 수정 : 2015-01-23 01: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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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죄라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광기라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구요.”

화형을 당해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있다. 그 범죄란 바로 자신의 정체성 대한 의문을 풀려고 시도한 죄였다. 도서관장은 대답한다.

“그렇다네. 우리 고을에서는 누구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선 안돼. 그런 생각은 죄가 되지.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고을에서 개인은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과 상상의 세계는 용납할 수 없네. ‘우리고을’은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는 곳이라네.”

소설가 심상대(55·사진)가 처음으로 펴낸 장편소설 ‘나쁜 봄’(문학과지성사)에서 펼치는 가상의 마을 이야기다. 무릉과 도원, 금강과 가운데마을 등 다섯 구획으로 나누어진 산속의 폐쇄된 공동체의 이름은 그냥 ‘우리고을’이다. 이곳에서는 ‘개인’을 제거하는 대신 공동체 성원들이 모두 평등하게 살아간다. 해마다 한식이면 망련초(忘戀草)를 달여 빚은 술로 부부간의 정을 씻어낸 뒤 ‘새낭군맞이’를 통해 남녀가 새로 짝을 맺는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부모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하며 공동체가 함께 양육한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큰보름날과 한식이면 봄에 광증을 일으키는 남녀 한 쌍씩을 촌장회의에서 심판해 화형시킨다. 이 화형 의식은 ‘광인’들을 걸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미추를 분간하는 일도 이 공동체에서는 죄악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근친상간의 후유증일지 모르되 모두 미남미녀로 태어나는데 ‘화담끝’이라는 이는 설중매가 너무 아름다워 베어버리는 죄를 지어 단죄를 받는다. 왜 죄가 되는지 마을 원로는 준엄하게 말한다.

“우리 조상은 미추를 분간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요. 사람의 생존을 위해 자연을 미추로 분간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글로 적어 책으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간에는 생존이 아니라 감정 때문에 미추를 분간하는 야릇하고 위험한 광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심상대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세상과 인간들을 분열시키고 지옥으로 몰아가는 주범은 역설적으로 피붙이나 정붙이에 대한 소유욕이요, 영악한 인간들이 풀어놓은 ‘요설의 덫’이라는 문제의식일 터이다. 미려한 문체가 읽는 쾌감을 돋우는 이 우화적인 장편의 말미에 심상대는 “이 소설은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살다 이 땅으로 돌아가 이 땅이 된 그들의 애절한 농담”이라고 덧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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