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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속 야구 꿈나무들… 꿈을 향해 쳐라!

입력 : 2015-01-22 22:15:45 수정 : 2015-01-22 22: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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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45〉 동글한 산이 아름다운 ‘바니’ 마을
도미니카공화국이라고 하면 야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선수 중에는 이 나라 출신이 많다. 도미니카공화국의 국민총생산(GNP)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이 야구선수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다. 선수 한 명이 미국에 건너가서 받는 연봉으로 그 친척까지 먹고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모래바람을 날리며 야구에 열중하고 있는 바니의 아이들.
그래서 이 나라는 어느 곳이나 공터에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러진 않았다. 아이들은 구두닦이 등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시의 이야기고, 지방에선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야구를 하며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의 모습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꾸려가는 도시 아이들보다 밝아 보였다. ‘바니(Bani)’에 갔을 때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보았다.

바니는 해변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다를 보려면 한참을 가야 했고 주변에 흔히 보이는 건 산뿐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동글한 산 모양이 독특하다. 섬나라의 산 형태가 특이한 건 당연한 것인데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과 직접 봐서 체득하는 지식은 다르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에서 배우고, 하늘의 변화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중요한지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는 몰랐다. 어른들이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지나보면 알게 된다’는 얘기를 해줬다. 이 말은 이제는 내가 말해야 하는 시기가 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공부만큼 정직한 일은 없다. 그래서 공부가 가장 쉽다고 말하는 어른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과 달리 이제는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어느 것 하나 정직한 게 없는 사회를 알게 되면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때 했던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란 걸 이제야 새삼 깨닫는다. 

예쁜 꽃으로 장식된 집. 집들은 아늑했지만, 너무 더워서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와 있다.
바니는 산토도밍고에서 작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마을이다. 산크리스토발에 다녀온 뒤, 무작정 버스 타는 일이 재밌어졌다. 바니행 버스는 완행버스로 모든 곳을 다 들르고 나서야 나를 바니에 내려준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버스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에어컨이 있는 버스를 탄다면 시원하지만,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에어컨이 없는 버스는 덥긴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서 달리기 시작하면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버스 안내원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음악을 크게 튼다. 운전사는 운전만 할 뿐이고, 안내원이 돈을 받고 거슬러 주며 호객까지 한다. 안내원은 각자 목적지가 다른 승객을 다 기억하고 정류장에 내려준다. 요금도 다르게 받아야 하고, 잔돈이 없으면 승객들에게 바꾸거나 상점에 가서 바꿔온다. 그리고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음악 선곡이다. 가끔 젊은 안내원은 춤을 추기도 한다.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재밌다. 의자는 무조건 한 자리에 한 명씩 앉아야 한다. 그 의자가 넉넉한 크기는 아니다. 작은 버스는 사람이 다 차면 통로에 간이 의자까지 놓아서 꽉 채운다.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는 정원이 다 차야 출발한다. 그래서 때로는 좁은 의자에 덩치 큰 사람과 같이 타면 비좁게 가야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바니행 버스에서 만난 친구는 산토도밍고에서 대학교에 다닌단다. 바니가 집이라서 산토도밍고에서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그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 대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경제학을 전공해 은행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집에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며 들떠 있었다. 그녀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명문대로 꼽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그녀가 예뻐 보였다. 

독특하게 생긴 바니의 산들.
버스에서 내리자 모래바람만 날리고 있었다. 작은 집 앞에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나를 사로잡았다. 무작정 그 산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곳에서도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아이들은 작전도 짜면서 열심히 야구를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미래는 모래 먼지처럼 불투명한 게 아니라 그 뒤에 보이는 산처럼 푸를 것이다. 큰 강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그 산으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면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땀이 흐르는 이 날씨에 야구공을 치고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힘이 생겼다. 또다시 걸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줄지어 늘어선 작은 집들은 꽃으로 예쁘게 꾸며놨다. 길에는 양, 염소, 닭, 그리고 돼지가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그 사이로 뛰어다닌다. 강에서 흘러온 물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물에서 빨래를 하고, 수영도 하고 놀고 있다. 정감 가는 이 동네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여행자에게 전혀 낯설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과한 친절도 과한 관심도 없이 옆집에 놀러 온 친척 정도로 대해준다. 사람들은 더운 집안에 있기보다는 가끔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밖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인사를 나누고 나도 낯설지 않은 척하며 집 앞에 앉았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시원한 음료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했다. 지나가던 꼬마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이들은 심심해서 그런 것인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심부름을 시키면 서로 가겠다고 안달을 한다. 아이들이 사 온 음료수는 내가 앉아 있는 집 주인에게 하나 주고, 내가 하나 마시고,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줬다. 아이들은 신나서 어디론가 뛰어가 사라져 버렸다. 여행자가 목까지 축였으니, 이제는 일어나서 떠나야 한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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