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확고 의지 속 치밀한 전략 필요 신년 초부터 남북한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제안과 역제안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재개해 남북 간 현안을 모두 논의하자는 입장이고,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중단,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 등을 잇달아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측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민생, 환경, 문화 등 핵심 분야에서 민간차원의 의미 있는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북한이 기대하는 5·24 제재 조치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남북관계의 장애 요인인 북핵문제와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풀어간다는 실용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천명했다. 반면 북한은 우리 측의 대화 제의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은 회피한 채 우리 측이 선제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대화 재개를 위한 환경이라면서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협박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애매한 태도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썸 타는’ 모습과 흡사하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 |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우리가 구상한 대로 각종 교류와 협력 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써 남과 북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주변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완고하고 타성에 젖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휴전상태인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북한의 비핵화 없이 달성할 수 없으며 북한의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유사시 2차, 3차 보복 능력을 확보하고 이를 북한이나 국제사회에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 둘째, 북한과의 대화나 교류협력 사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나 우리 정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남북대화나 교류협력을 적극 추진하되 우리의 국가 목표나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원칙하게 뒤바뀌거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잘못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혼선을 초래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 전제주의 독재국가인 북한은 선전과 선동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체제이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체제의 선전선동에 우리 사회와 언론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정부 당국은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언론, 학계를 대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정책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 그동안 자문위원회를 분기별로 개최하거나 고위 당국자들이 세미나 등에 참석해 축사나 기조연설을 통해 정부 입장과 정책을 설명했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 핵심적인 정보와 현질적인 정책 대안을 심층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회를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핵심 정보 공유와 정책 공감대가 형성돼야 대북 협상전략과 전술도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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