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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보이는 음악인들의 무대 뒤 세계

입력 : 2015-01-30 21:55:12 수정 : 2015-01-31 0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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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오케스트라/가레스 데이비스 지음/장호연 옮김/아트북스/1만8000원


공연장에서 만나는 해외 유명 악단은 늘 말쑥하고 여유롭다. ‘세계 정상급, 100년이 넘는 역사’식의 명성까지 더해지면 권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이 몇 시간 전까지 시차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거나 공연이 끝나고 인근 술집에서 회포를 풀리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플루트 연주자 가레스 데이비스는 독자를 무대 뒤 세계로 초대한다. 연주회장의 조명에 다듬어진 음악인이 아닌 먹고 마시고 일하는 생활인의 면면을 공개한다.

명문 악단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LSO) 단원인 그는 해외 순회공연을 하며 쓴 일기를 책으로 묶었다. 데이비스는 자신들의 연주 여행과 1912년 LSO의 역사적인 첫 미국 순회공연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100년 사이에 달라진 풍경들, 그럼에도 음악인들이 공통으로 마주하는 삶의 모습을 전한다.

LSO는 매년 영국 런던에서 70회 이상 음악회를 연다. 외국 순회 공연도 비슷한 횟수로 가진다. 정상급 악단으로서는 유독 벅찬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급료는 훨씬 낮다. 세계 곳곳의 공연장을 다니며 박수 갈채를 받는 일은 화려해 보인다. 실상 이들은 세계 각지로 ‘통근’하느라 비행기, 기차, 차 안에서 막대한 시간을 보낸다. 데이비스는 얼추 20년을 출퇴근에 쓸 것이라 계산한다.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석에 시달리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리허설을 하는 일도 잦다. 아무리 피곤해도 막상 무대에 올라 지휘자가 단원들을 몰아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걸 쏟아낸다.

1912년 LSO의 미국 순회공연은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지휘자에 돈과 관심이 집중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설적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는 순회공연 연주료로 지금 돈으로 50만달러(약 5억5000만원)를 받았다. 니키슈가 하루밤에 받은 돈은 오케스트라 단원 97명의 하루 연주료와 맞먹었다. 북미 순회공연 동안 니키슈를 쫓아다니는 여성 팬이 있을 정도였다.

데이비스는 영국식 유머를 곁들여 음악인의 생활을 적어나간다. 일기 특유의 흥미로움에 더해 예사롭지 않은 입담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눈에 비친 지휘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지휘봉 없이 손짓만으로 지휘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늘 눈빛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전달한다. 그가 웃으면 “속도를 빠르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적은 말과 동작으로도 3분 만에 LSO 소리를 변화시킨다. 2013년 작고한 콜린 데이비스 경은 “자신이 무대를 확실히 책임지면서도 우리가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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