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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마음에서 나오는 음악이 감동을 주지요”

입력 : 2015-02-16 20:39:40 수정 : 2015-02-16 20: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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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국·공립 악단 첫 여성 지휘자 성시연 경기필 예술단장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관계는 남녀와 같아요. ‘케미스트리’(남녀 사이 화학 반응)가 맞아야 교감이 쉽게 형성되죠. 아무리 좋은 지휘자와 악단이 만나도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사이가 될 수도 있어요. 다행히 저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케미스트리가 잘 맞습니다.”

벌써 1년이다. 지난해 1월 성시연 지휘자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경기필 예술단장에 취임한 뒤 사계절이 흘렀다. 국·공립 악단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였다. 그가 지휘봉을 잡았을 때 경기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전임 지휘자가 불미스럽게 물러나면서 악단 이미지가 실추됐다. 반 년간 수장 없이 운영됐다.

처음으로 악단을 온전히 책임지게 된 성 단장은 지난 1년에 대해 예술적으로는 ‘만족’, 운영면에서는 ‘아쉬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악단의 빠듯한 살림을 개선하려 밖으로 뛰었다. 도립 교향악단이기에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도와 소통까지 모두 신경써야 했다. “다차원적 눈으로 보면서 모자이크를 짜맞추는 것”이 지휘자 역할임을 깨달은 한 해였다.

예술적인 면에서 경기필은 지난해 3월 말러 2번 교향곡 ‘부활’ 공연을 통해 건재를 알렸다. 성 단장은 “기량면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나 해외 악단과 비교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경기필이라는 배가 새로 출항했다는 의미에서 감동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했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단장은 지휘에 대해 “폭풍 치는 호수를 건널 때 노 하나로 능숙하게 가는 사람, 거친 물결을 피해가는 사람,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등 여러 방법이 있다”며 “지휘자가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과 타이밍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주가 모두 완벽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으면 좋죠. 하지만 음악에서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실수나 부족함이 있어도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음악이 감동을 준다는 걸 느꼈어요.”

성 단장은 경기필의 장점으로 “역동하는 표현의 폭이 넓은 점”을 꼽았다. 그는 “국내 오케스트라는 한계가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경기필은 파장의 공간이랄까, 감동을 줄 수 있는 폭이 넓다”며 “그래서 고전, 후기 낭만, 현대곡까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단원 사이의 실력 차이, 취약한 관악 부문 등 고질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1년 만에 좋아질 부분은 아니에요. LA필하모닉 데보라 보다 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에 시간을 주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바라지만, 인문학이나 예술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경기필은 올해 시민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를 확대하려 한다. 성 단장은 “최근 영국 필하모니아 런던의 공연에 갔는데, 교향악단 직원의 부모님이 평생 처음으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 왔다더라”며 “대단한 악단이 즐비한 런던이 이 정도인데 경기도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침 소리마저 조심하는 정제된 클래식 공연장과 달리 시민 음악회는 산만해지기 쉽다. 음악가로서 엄숙한 분위기가 좋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앞으로 200년, 300년 후에 클래식이 어디로 갈까, 누가 들을까’라고 얘기해요. 답답하죠. 클래식은 고귀하고 종교·철학의 집합체예요. 하지만 이렇게 경직된 채로 몇 세대나 갈 수 있을까요. 음악을 우대하는 독일에서도 교향악단 예산을 삭감하고 악단을 통폐합하고 있어요. 클래식도 감각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대중에게 녹아내리는 기획으로 벽을 허물 수 있다고 봐요. 경기필과 제 목표도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음악인’입니다.”

올해 경기필의 역점 공연은 내달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자주 도전하지 않는 곡이다. 연주 시간만 2시간이 넘는다. 성 단장은 “국내에서 교향악단은 오케스트라용 곡만, 합창단은 합창곡만 하는 등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게 충격이었다”며 “벽을 깨고 싶었고 편식 없이 다양한 음악을 제공하는 게 음악인의 자세라 여겼다”고 밝혔다.

경기필은 올해 해외투어도 나선다. 그는 해외투어로 악단 실력이 쑥쑥 느는 걸 봐왔다. 이 때문에 취임 초 단원들에게 기약 없이 해외투어를 약속했다. 의지가 있으면 통하는지, 경기필은 오는 6월 독일 음악축제인 자를란트페스티벌에 초대됐다.

성 단장은 경기필 일정이 없을 때는 영국, 미국, 독일 등 해외 곳곳을 다닌다. 영국에서 필하모니아 런던과 ‘오늘의 음악’이라는 시리즈 공연을 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데뷔 공연을 갖는다. 지휘 이력이 쌓일수록 “지휘봉 위에 들려 있는 100명의 집중력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파다닥파다닥 하는 전류”가 느껴진다. 여성 지휘자가 화젯거리가 아닌 시대지만, 여전히 클래식 지휘자의 대다수는 남성이다. 그는 여성 지휘자로서 “수면 위와 밑은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한 오케스트라에 제가 추천됐는데, 그 악단에서 ‘우리는 다음 시즌 여성 지휘자 정원이 꽉 찼다’고 하더라고요. 여성 지휘자에게 여성 독주자를 붙이거나 여성 작곡가의 곡을 연계시키기도 해요. 흥미를 유발하려는 거겠죠. 이번에 스웨덴의 한 악단이 여성 작곡가 곡을 해달라기에 ‘내가 여성 지휘자라서 맞추려는 거냐’ 물었습니다. 남녀 지휘자가 동등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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