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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얀 모자 쓴 거인처럼 … 만년설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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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26 22:03:18 수정 : 2015-02-26 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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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자부심' 후지산 품은 시즈오카현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가 관현악곡 ‘바다’를 작곡할 때 영감을 받았다는 일본 목판화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물결 사이로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1862∼1918)가 일본 문화에 심취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1905년 발표한 관현악곡 ‘바다’는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목판화 ‘가나가와(神奈川)의 거대한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작은 배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몰아치는 틈새로 멀리 후지(富士)산이 보인다. 드뷔시는 이 그림이 너무 좋아 ‘바다’ 악보를 출판할 때 표지로 썼다고 한다.

후지산이 가나가와현보다도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시즈오카(靜岡)현이다.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100㎞쯤 떨어진 시즈오카는 2009년 문을 연 공항에 ‘후지산시즈오카국제공항’이란 공식 명칭을 붙일 만큼 후지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고장이다. 해발 132m 산지에 자리한 후지산시즈오카공항에 내린 외국인이 처음 만나는 사진은 후지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드넓은 차밭이다. 후지산과 녹차는 시즈오카 사람들의 애향심을 자극하는 양대 자랑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시즈오카의 드넓은 차밭. 후지산시즈오카국제공항에 크게 내걸린 이 사진은 외국인이 시즈오카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풍광이다.
도쿄를 출발해 고속버스로 두 시간쯤 달려 시즈오카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너머로 후지산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길 반복한다. 해발 3776m 높이 후지산 꼭대기는 거의 1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다. 이름하여 만년설이다. 마치 거인이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것 같은 신령스러운 모습에 일본인 누구나 경의를 표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 시즈오카현 서울사무소 관계자가 “후지산은 일본인들 사이에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며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됐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한 푼의 에누리도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지산을 제대로 알려면 물론 산 정상에 오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게다. 하지만 4∼5일가량의 짧은 기간 동안 시즈오카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멀리서 후지산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너무 가까워지면 그동안 품었던 ‘환상’이 깨지는 경험은 남녀관계에선 제법 흔하지 않던가.

시즈오카에 아주 작고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있다. 우리말로 ‘맑은 물’을 뜻하는 시미즈(淸水)란 이름부터 퍽 예쁘다. 항구답게 해산물이 풍부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스시, 초밥 등을 맛볼 수 있다. 항구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에스펄스 드림 플라자’는 완공된 지 얼마 안 돼 시미즈를 대표하는 명소이자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쇼핑몰, 식당, 영화관, 오락시설 등을 모두 갖춘 복합 레저타운인데 관광객은 물론 지역주민들로 늘 붐빈다.

일본 지도를 펼치면 시즈오카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지형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시즈오카 중심부가 중국이라면, 거기서 툭 튀어나온 이즈(伊豆)반도의 생김새는 영락없이 한국이다. 시즈오카 중앙과 이즈반도 사이의 움푹 팬 바다가 바로 스루가(駿河)만이다. 스루가만을 건너 시즈오카 중심부와 이즈반도를 오가는 페리의 출발점 역시 시미즈항이다.

항구에서 대형 여객선을 타고 시미즈 앞바다를 크게 한 바퀴 도는 크루즈 여행은 후지산을 관찰하기에 제법 좋은 코스다. 날씨가 흐리면 어쩔 수 없지만, 해가 뜬 화창한 날은 멀리 후지산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하얀 후지산 꼭대기가 시미즈 앞바다의 맑고 푸른 물과 어울려 청백의 그윽한 조화를 이룬다. 독야청청. 주변의 모든 자연지물들을 제치고 홀로 우뚝 선 후지산의 위용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말이 없다.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항에서 바라본 후지산과 대형 여객선. 배를 타고 항구 앞바다를 한 바퀴 도는 크루즈 여행은 후지산을 관찰하기에 제법 적합한 코스다. 꼭대기에 하얀 만년설을 인 채 주위 모든 자연지물을 제치고 우뚝 선 후지산의 위용은 ‘독야청청’ 그 자체다.
시즈오카관광협회 제공
한국의 많고 많은 명산 중에서도 백두산과 금강산을 으뜸으로 치는 게 보통이다. 아쉽게도 휴전선 이북에 있어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다. 후지산을 향한 일본인들의 사랑과 자부심은 백두산, 금강산을 대하는 우리의 그것과 맞먹는 듯했다. 선실 밖으로 후지산이 보이자 일본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나 갑판에 뛰쳐나가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3명이 서툰 솜씨로 셀카봉을 사용하려다 번번이 낭패를 보는 모습에 옆자리의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후지산이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윽고 항해를 마친 배가 유유히 시미즈항에 입항했다.

출항 때처럼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끼루룩 울어댔다. 후지산보다 훨씬 아름답고 장엄한 우리네 백두산, 금강산은 언제쯤 여유로운 관광이 가능할까. 갈매기 울음 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시즈오카=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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