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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의 삶속 자연의 품에서 찾은 행복

입력 : 2015-03-04 21:18:04 수정 : 2015-03-04 21: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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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미시마 유키코 감독作 ‘해피 해피 와이너리’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객석의 관객은 마냥 착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해피 해피 와이너리’는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지녔다. 2012년 ‘해피 해피 브레드’로 국내 팬들에게도 소소한 행복감을 안겨준 미시마 유키코 감독이 이번에는 빵 대신 와인을 통한 치유의 힐링무비를 선사한다.

일본 홋카이도 내륙 지역인 소라치는 메이지시대 포도주 양조장이 만들어진 일본 와인의 발상지다. 소규모지만 개성있는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가 많고, 일본을 대표하는 와인용 포도산지로 유명하다. 막부시대 말부터 시작된 탄광개발로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암모나이트 등 수많은 해양 생물의 화석도 발견되는 곳이다. 

‘해피 해피 와이너리’는 ‘흙과 거기에 사는 식물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가슴속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아내면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상처까지 어루만진다.
도쿄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오(오이즈미 요)는 아버지가 남긴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 양조에 몰두하지만 쉽지 않다. 아오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의 밀밭을 가꿔 온 것은 아오의 띠동갑 동생 로쿠(소메타니 쇼타)다. 각자 포도와 밀을 가꾸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두 형제 앞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여인 에리카(안도 유코)가 캠핑카를 몰고 나타나 무작정 포도밭 옆의 땅을 파기 시작한다. 아오는 에리카를 쫓아낼 궁리를 하지만 로쿠와 마을 사람들은 물론 농장을 지키는 털북숭이 개 바베트마저 에리카의 매력에 빠져든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보다 나는 땅이 더 좋아. 땅에는 온갖 생물들이 살고 죽고… 그런 역사가 담겨 있어. 암모나이트 처럼. 흙은 차곡차곡 쌓여온 생명이야.”

에리카는 자신의 키보다 깊이 판 구덩이에 들어가 땅의 품에 안긴 채 어린시절로 돌아가 회상에 잠기곤 한다.

에리카는 부모의 결별 탓에 고독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고, 아오는 자신을 덮친 병마인 난청 때문에 더 이상 소리를 구분할 수 없어 지휘자를 포기했다. 그것은 주인공의 독백처럼 “파란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비, 어느날 당하는 사고 같은 것”이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아픈 과거 상처를 어루만지며 화해와 치유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포도나무는 겨울내내 눈밑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봄이 되면 눈녹은 물을 빨아들여 가지 끝에 수액을 한방울씩 떨어뜨린다. 일명 ‘포도의 눈물’이다. 그리고 나선 포도로서 한번 죽고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와인은 오랜 세월 전부터 수많은 눈물을 품고 왔어. 당신 손에서 다시 태어난 포도의 눈물들은 100년 후 누군가에게 큰 기쁨이 될 거야. 암모나이트처럼 몇억년을 기다리는 자세로, 흙과 거기에 사는 식물들을 믿고 지켜봐 줘. 미련할 정도의 정열로. 그러면 언젠가 파란 하늘처럼 탁 트인 맛이 나는 와인을 만들게 될 거야.”

자신에게 쓴 에리카의 편지를 읽은 아오는 구덩이 속에서 그간 번번이 실패한 경험을 만회할 힘을 얻는다.

“이렇게 멀리까지 뿌리를 뻗다니…너도 필사적으로 양분을 찾고 있었구나.”

에리카가 파놓은 구덩이에서 굳은 생명력으로 먼 길을 달려온 포도나무의 뿌리를 발견한 아오는 외골수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기 안에 스스로 자신을 가둬서는 안 된다고 깨우친다. 파란하늘에서 갑자기 내리는 비는 이제 더 이상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에리카와의 사랑을 이루는 매개가 된다.

관광엽서의 사진처럼 예쁜 화면을 얻기 위해 제작진은 1년 동안 홋카이도의 자연 풍광을 별도로 담아냈다. 포도와 밀의 성장, 수확 시기를 미리 조사하고 그 일정에 맞춰 찍었다. 현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시기와 크기, 모양, 광택 등을 고려해 ‘포도의 눈물’ 촬영에 성공했다.

밑줄을 그어두고 싶은 대사도 눈에 띈다. “바람에 밀밭이 황금빛으로 살랑이면 절로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지” “땅을 알고 나무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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